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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Oct 06. 2018

제목 보고 속지 말자. 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제목에 집착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는 평을 들어도 제목이 진입장벽이면 손이 가지 않는다. 반대로 눈에 띄고 독특한 제목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같은 영화들.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같은 이유로 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 넘게 걸리는 '포르투갈 리스본'에 생각만 해도 감성이 넘쳐흐르는 '야간열차'라니. 낭만이 가득했다. 무기력하게 살던 주인공이 야간열차를 타고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경험을 하고 무언가 깨닫는 내용을 기대했다. 제목을 보고 혼자 이미 영화 한 편을 찍었다.


아, 낚였다.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기에 낭만이란 단어는 너무 가볍다. 낭만보다 숭고하고 무거우며 복잡하고 찬란한 단어가 필요했다. 개인의 사연보다는 더 포괄적인 포르투갈에 대한 서사가 펼쳐진다.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아쉬웠던 부분도 이와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주인공 같지 않다. 그레고리우스는 그가 발자취를 쫓는 사람의 삶을 설명하기 위한 전달자이다. 왜 그가 리스본에서 누군가의 삶을 찾아다니는지, 왜 지금까지 그레고리우스의 인생과 다른 행동을 하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느낌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제목만큼 엔딩 장면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이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베른에 있는 그레고리우스의 집. 어둡고 작은 방에서 그는 혼자 자리를 옮겨 앉으며 체스를 둔다. 리스본으로 떠나기 전, 그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장면이자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희미하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책에서도 체스는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다.)


원작인 책을 읽으면 왜 영화에 여백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책은 무려 600쪽에 달하는 분량이다. 쉽게 읽히는 문장도 아니고 몇 번을 머리에서 곱씹어야 이해할 수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잠이 들거나 이해하지 못해 다시 읽어야 한다. 작은 감정도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다루며 개성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111분의 영화는 책 속의 디테일은커녕 한 명의 인물을 제대로 다루기도 버겁다.


그럼에도 이 글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책과 영화 모두를 추천한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뭘까?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영원히 지속되는 우정이 가능한가? 신이란 무엇인가?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다른 이의 일생으로 살 수 있을까? 진정한 내 모습은 무엇인가? 죽음은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먹고사는 문제에 치여서 머릿속을 스쳐가는 질문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본질적인 질문은 유치하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담담하지만 담대하다.


그대여, 삶이 권태로운가?

해답이 저절로 찾아오길 바라지 마라.

끝없이 사유하라.

선택은 언제나 그대의 몫이다.

영화와 소설 중 어느 것을 볼 지도.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을 선택하는 일도.


사진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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