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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in x Mar 22. 2019

산티아고 순례길의 바다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요?

[에세이]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 (14) : 해안길의 매력에 허우적

“바다는 한국에도 있잖아? 왜 여기에서 바다를 보려고 하는 거야?”


바다를 보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다양한 길 중에 카미노 포르투게스(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길)를 선택했다고 말하자 순례자 친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에도 멋진 바다가 많다. 심지어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다. 그런데도 굳이 순례길에서 바다를 보고 싶었고 카미노 포르투게스 해안길을 걸었다. (정확한 이름은 ‘Camino portugues da costa’이다) 바다보다 산이 좋아서 해안길은 많아야 하루면 충분하다는 순례자 친구는 내 마음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리스본 대성당에서 구매한 가이드 북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포르투(Porto)에서 스페인의 레돈델라(Redondela) 까지 해안길로 표시하고 있다. 중간에도 갈라지는 길이 있어서 내륙으로 걷는 중앙길로 합류할 수 있다. 해안길이라는 이름 때문에 바다가 보이는 곳만 걷는다고 착각할 수 있는데, 어떤 날은 온종일 바다가 전혀 보이지 않는 마을 길이나 산길을 걷기도 한다.



만약 주변 사람들에게 순례길을 추천한다면, 해안길은 빼놓지 않고 꼭 말한다. 길이 완만한 편이라 나이나 체력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쉽게 걸을 수 있다.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 찍으며 함께 걷기도 좋다. 게다가 대부분의 한국인 순례자가 귀한 시간을 만들어 먼 곳까지 오는 만큼 빼어난 풍경을 보면 더 좋지 않을까? 실패할 확률이 낮은 길이다.


단점이라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프랑스에서 시작하는 순례길보다 포르투갈 길이 역사가 짧고 특히 해안길은 더 짧다. 요새 들어 순례자가 늘고 있기 때문인지 길은 잘 정돈되어있다. 그에 비해 아직 숙소 등의 순례자를 위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10월 중순쯤이 비수기인지 길가에 별로 없는 식당마저 문을 닫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불편함은 가볍게 무시할 만큼 아름다운 바다가 있다. 해안길을 걸으며 언어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고작 일기장에 쓰는 문장이 ‘멀리서 보는 바다도 가까이서 보는 바다도 어딜 봐도 참 멋진 곳이다.’ 라니. 바다 탓을 한다. 어떤 천재가 와도 지금 이곳의 바다를 글이나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할 거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는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고 일기에 적는다.


가장 아름답던 아 구아다(A Guarda)에서 바이오나(Baiona)의 짙은 남색 바다, 그 모습에 자동으로 허풍쟁이가 된다. 투명하게 속을 보이거나 새파랗지도 않다. 검정만큼 차가운 색도 아니다. 남색은 함부로 담고 있는 그릇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무엇을 품고 있는지 쉽게 보여주지 않아 깊숙한 속내가 더 궁금하다. 바닷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시선을 올려 하늘을 보자. 구름이 거의 없는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바다의 경계는 누군가 칼로 자른 듯 정확하다. 하지만 파랑으로 펼쳐진 세상은 일말의 위험도 없이 평온하고 답답함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듯 시원하다. 그 세상에 온 몸을 던져 양팔 가득 바람을 안으면 날개 없이도 날 것 같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를 만큼, 하늘과 바다를 향해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도 잠시. 파도에 끊임없이 부딪쳐 깎인 바위와 여전히 제 몸을 부딪혀 하얗게 흐트러진 파도의 압도적인 형세에 넋을 잃는다. 멀리서는 아주 작던 소리도 바로 앞에서 들으니 천둥 못지않게 크다. 빠르게 나비의 꿈을 접고 멀리서 바라보기로 한다.



바다의 모습은 종잡을 수 없다. 어느 순간 짙은 남색을 덜어내 속이 투명하게 비치는 해변이 된다. 토요일의 해수욕장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광욕이나 산책을 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과 하얀 모래사장에서는 흙 묻은 운동화와 긴 레깅스보다 한 뼘 수영복이 더 어울렸다. 촤르르 소리를 내는 파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치고 열을 내뿜는 발에 발을 담가볼까 생각했지만, 약간의 모래가 남아도 발이 아프므로 참았다. 그대로 괜찮다. 손바닥만 한 수영복이니 티끌도 입지 않고 수영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움에 덩달아 해변의 여유를 얻었다.



해안길은 스페인 백화점 엘꼬르떼가 있을 정도로 번화하고 오랜 역사를 지닌 관광지 비고(Vigo)의 마지막 밤으로 끝이 났다. 중앙길로 돌아가는 동안 산길 사이로 살짝살짝 바다 비슷한 큰 물줄기가 보였다. 강인지 바다인지 정체를 몰라도 바다라 믿고 싶은 크고 잔잔한 물줄기를 보며 얼마 남지 않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해 걸었다.



한국의 일상 속 풍경을 떠올려보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은 회색 건물과 그마저도 미세먼지로 뒤덮여 재난영화 같았다. 밤이면 거리를 가득 채운 간판들이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며 시선을 끈다. 혹은 빼곡하게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아파트가 떠오른다. 편리하지만 인공적인 도시에서 매일 생활하니 오히려 빨강, 파랑, 초록 등 총천연색으로 물든 세상이 누군가 만들어놓은 느낌이었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누르면 구멍이 생기고 문지르면 지워지는 허구의 세상이 아닐까?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면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연신 ‘우와’라고 감탄사를 외치거나 ‘예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나고 보니 굳이 어렵고 길게 말해야 하나 싶다. 무언가를 보고 오직 순수한 마음만 담아 예쁘다고 표현한 적이 얼마나 될까? 예쁜 곳에 가도, 예쁜 음식을 두고 숨 가쁘게 사진 찍기에 바빴다. 때로는 나만 느끼는 아름다움에 눈치를 보며 숨기지 않았을까? 반대로 모두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혼란과 죄책감을 느꼈을까? 예쁜 것을 예쁘다고 느낄 여유는 있었을까? 이미 마음이 딱딱해져 어떤 아름다움도 느낄 수 없었을까?



해안길을 걸을 땐 구태여 현실의 시름과 걱정을 덜어내려 노력하거나 “지금 난 힐링 중이야.”라고 자신을 강요할 필요도 없었다. 티 없이 깨끗한 ‘멋지다’, ‘예쁘다’라는 단어에 마음속이 말랑말랑 몽글몽글 부풀어 오르고 눈과 입술이 둥그렇게 접혀 미소 짓는다. 따뜻하고 알록달록 생기 넘치는 에너지가 온몸을 채운다.


카미노 포르투게스의 바다는 예쁘다.

그리고 해안길 걷길 정말 잘했다.


가기 전 카미노 포르투게스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면?▼

바다만큼 좋았던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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