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나. 타인. 세상의 에너지를 나에게로 끌어오기
나의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가진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돌려주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밖으로 에너지 분출하는 것을 잠시 막아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욕망은 소비욕으로 번져갔다. 그래서, 결국 회복을 위해서는 방향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돌려주는 게 필요했다. 이것을 위해 나는 넘쳐나는 일상의 생각들과 밖으로 비워내지 못한 말과 마음들을 일기장에 쏟아냈다. 내 일상 속에 사람으로 채워두며 그들에게 말하며 쏟아내던 마음과 말들을 나 자신을 중심축으로 두며 채워나간 것이다.
처음엔 어색해서 누구에게 말하듯이 있었던 일들만을 적었지만 점점 갈수록 있었던 일들과 그 일들을 해내기 위해 썼던 마음들, 힘든 일에는 잘했던 점을 칭찬하고 다음엔 수정해 나가며 성장하는 방법들까지 적어두느라 작은 수첩을 꽉꽉 채워 하루에 여러 장을 쓰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렇게 내 하루들이 모여서 긴 글들의 문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때로는 나에게 에너지를 쓰는 일이 밖으로 분출하는 데에 밑바탕이 되는 시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들을 포기하면서 사는 게 나의 중심을 다시 돌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위험하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주로 힘든 시간들을 겪고 나서 일기장에 글을 쓰고 싶어 지는데, 앞으로 다시 나, 타인, 세상 중 하나에 꽂혀 그것들로 삶이 채워진다고 해도 내 세계 속에서의 주체를 던져버리지 않기 위해서 일기를 쓰는 행동으로 돌아올 것을 다짐했다. 또한, 이 에너지들을 나에게만 들려주느라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려울 때에는 책을 읽어서 3인칭의 시점으로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서서히 없애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요즘은 조예은 작가님의 '입 속 지느러미'를 보며 낭만을 쫓아가는 게 두려워질 때마다 위로를 받고 있다. 그 세계를 사랑하며 다시 현실의 나를 키워나가는 단단한 초석을 빚어내고 있다. 콘텐츠들에 의해 삶이 지탱받는 순간들이 없어지는 게 두려워지기도 하고, 현실의 내가 무너져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죽어있는 시간들이 생생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기에,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에너지 분출의 농도와 속도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존재가 사라지는 위험까지 도달하여 그 시간과 공간을 탈출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욕망을 억제하고 억지로 버틴다는 감각으로만 살아가느라 고장 나는 빈도가 낮아진다. 나는 그것을 할 줄 몰랐고, 속도를 줄이는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도전하면 그것의 고점을 찍을 때까지 미쳐서 하거나, 아예 안 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밖에 주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시작점에서만 힘을 내는 게 익숙해지면 시작점에서 힘내는 것이 덜 하고, 과정은 자연스럽게 자동화가 되듯이 익숙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얘 아무것도 안 하는 0의 날이 되지 않는 이상 모든 과정 안에서 그렇게 파도를 계속 일으킬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 순간의 시작을 힘들이면서 하지 않아도 되며 과정 속의 새로운 시작들만 계속해서 익숙해지고 성장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시작하고 그 환경에 내 몸을 던지는 것부터 힘이 많이 들었는데 익숙해지니 그 공간에 가는 것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고 안 가려고 해도 할 것 없으면 가게 되었다. 하지만, 몸이 안 좋아서 중간에 멈췄었다. 그래서 시작을 다시 힘을 들여서 했어야 했다. 그래서 다시 시작이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극단으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선택지보다는 힘드니까 무리해서 하지 않아 봐야겠다는 선택지가 생겼고, 가기 싫어서 나가는 것조차 망설여질 때 '맛있는 것 먹으러 나가기만 해도 성공이다~'라면서 밖으로 몸을 던졌더니 어느새 운동하러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조절해야 하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운동을 컨디션에 안 맞게 무리해서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니면 음식을 자극적인 것들로 채워버리고 싶다는 욕망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래서 그것들을 꾹 누르는 게 아니라 그대로 실천해 보았다. 스트레스가 풀리긴 했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것들로 일상을 채우진 말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 먹는 것과 운동이 컨디션에 맞는 행동패턴으로 돌아오자, 원인이 마음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고, 아픈 시간대들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기에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이지 않고서도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기 위해 아직은 아물지 않은 상처들과 감정들은 품고 있었으며 표면적인 것들이 괜찮아졌다고 해서 풀려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다시 마주하는 후퇴의 시간을 가졌다. 몸의 긴장을 다 풀고 아픈 시간대를 떠올리며 그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면서 울었다. 그 감정들을 품고 살게 한 과거의 시간을 세워두고 원망의 말과 아픈 감정들을 토해내듯이 분출했다. (나 스스로만 온전히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진행했다. 나를 마주친 사람이 내가 우는 모습에 놀라서 울지 말라고 달래주느라 쌓인 감정이 풀리는 것을 방해받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들로 돌아가면 가슴이 답답하고 화내고 싶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드러내서는 안 되는 시간들을 내가 알아주었다. 그렇게 그를 지금의 내가 마주하며 안아주었다. 그를 편들어주는 말들을 세워둔 시간 속에서 다시 쏟아냈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다시 떠올리며 연습했다. 그 상황을 관련 없는 타인이 되어 감정을 빼고 다시 바라보니 한쪽이 (-)의 에너지를 뿜어낸다면, 다른 쪽이 (+)가 되는 자연스러운 이치에 놓여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의 입장에서 (-)가 어떻게 보였을지도 상상해 보았다. 그러고 나니, (-)의 입장을 자처하는 것이 감정이 담긴 내면의 아이를 고독하게 방치해 두는 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더욱 한 세계의 발을 들이는 것에 나라는 존재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아픔들이 풀리지 않아서 고통스러울 때면 무리하면서 일하거나 먹어서 아파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런 나를 나만큼은 더욱 아프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번의 좌절을 계기로 더욱 단단해지는 방법들을 적용하고 있다.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이제는 알고 있고, 내가 알아봐 주고 치유해 주는 노력을 완전히 괜찮아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테니 다시 상처받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흐르는 파도를 타지 않고 멈춰서 버티고 서 있는 시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시간 속에 담겨있는 경험의 기회들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짓은 그만하고 싶어질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멈추게 된다고 해도, 회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고 해 봤으니 이게 싫어서 발버둥 치면서 이상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상처를 되풀이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일은 안 할 것이다. 내 존재를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게 당연해지는 일도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추천 노래 - 제목 : 123-78 / 가수 : 보이넥스트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