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Piano Sonata No.20 D.959 mov.2
출근길에 보는 호수가 그야말로 녹조라떼였다. 탁한 회색 물 표면에 녹조가 낀 데다 하얀 거품까지 떠 있었다.
그 더러운 데 작은 물새 하나가 가만히 앉아있었다. 눈빛이 허망해 보였다. 그나마 쉬어갈 곳이 이런 상태라니. 서울시와 공원관리실에 민원을 보냈다.
다행히 며칠 만에 물이 깨끗해졌고 물 위로 나는 새가 많아졌고 오리 떼도 보이기 시작했다.
전까지는 어디에 있다 왔을까, 이곳이 살 만한 곳으로 바뀌었다는 건 어떻게 알고 왔을까.
엄마가 “동물은 다 알지” 하셨다.
전에 읽은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바람과 함께 노래하고 다람쥐와 작은 새들과 놀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별에 이야기를 담아 보냈다.
불을 피울 때엔 영혼이 빠져나간 마른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썼다.
땅과 물, 바람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감지했고 산과 함께 깨어나고 숨 쉬고 잠들었다.
꽃과 나무, 계절의 흐름이 곧 그들 삶의 모습이었다.
공원 호수에 동물이 많아진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바람이 일러주는 대로 삶의 터전을 찾아온 거였다.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이 동네도 꽃 풀과 동물의 보금자리였을 거다. 인간은 전쟁으로 무고한 생명들을 죽이면서까지 땅을 차지했고 전쟁이 없는 동안에도 살생을 연습하고 즐겼다.
오랜 조화가 깨져 흩어진 피맺힌 땅에는 조악한 문물이 기념비인 양 세워졌다. 인공의 부조화가 인간의 숨통을 조이자 그제야 땅을 파고 물을 채우고 식물을 여기저기서 끌어와 자연과 비슷하게 꾸며 보기도 한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그 어느 날에도
깊은 산속까지 뻗쳐오는 잔인하고 흉포한 질주를 바람은 듣고 있었다.
그간 품어 온 생명들에 가장 먼저 경고했을 거다. 위험해, 위험해.
나무, 지빠귀, 땅쥐, 개구리, 여우, 개, 원주민은 숨죽이고 몸을 숨겼지만 위대한 문명으로 무장한 가짜 아메리칸은 그들 목적을 쉽게 찾아낸다.
난데없는 습격에 인디언이 된 진짜는
비명을 질렀을 것이고
저항했을 것이고
죽을힘을 다 해 지키려 했을 것이다.
이내 더 큰 파괴를 막기 위해 어쩔 도리 없이 자신들을 내세웠을 것이다.
총칼의 질서 아래 우습게 한데 묶여 그들 삶의 전부와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떠나야 했을 것이다.
그리곤 무한히 걸은 길,
텅 빈 눈은 무엇도 보지 않고 보여주지도 않았다.
가장 자연스러운 저항이었다.
그저 안으로 바람, 꽃, 시냇물, 사슴, 작은 풀의 지금을 그렸을 뿐이었다.
왠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가짜들이 깔아 둔 길을 끝없이 걸으며
고된 길 위에서 스러진 아기, 노부모, 친구를 안고 업고 끝없이 걸으며
우리들 떠나 온 집을 그렸으리라.
생명을 이어갈 만한 곳을 자연히 알고 찾아온 논병아리, 오리, 가마우지, 왜가리, 백로,…
문명이 자연을 도려낸 자리에도 꼿꼿이 삶의 모양을 맞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유리벽에 차에 부딪혀 병들어 찢겨 죽어가며 죽음으로 저항하는,
인디언이 되어버린 지구의 원주민.
날 때부터 가짜인 인간이
고요하게 지나고 있는 무수한 죽음의 가장자리에서
왠지 눈물을 흘리며
지구의 진짜 주인에게 전하는 무거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