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Sonata No.2, Op.22 mov.1
월요일 출근길 문득 버스 밖으로 보이는 작은 공원이 낯설고 같이 달리고 있는 차량들이 어색했다. 건물로부터 지하철역으로부터 이정표로부터 미시감을 느꼈다. 커다란 게임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는 세상이다.
나는 하다못해 이 버스의 손잡이 하나도, 위급 시 유리창을 깰 때 쓰는 망치 하나도 혼자 힘으로 만들 수가 없는 인간인데 날 때부터 환경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었기에 누리며 살아간다.
구석기 신석기는 까마득한 옛날이 아닌 알몸으로 떨궈진 낯선 땅이면 될 거다. 가진 것 없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바로 그곳이 나의 구석기다.
날짜를 세어 나가기 위해 널찍한 돌판에 작은 자갈로 숫자를 새기다 보면 연필이 간절해지는데 이 가장 단순한 필기구조차 만들어 내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볼펜, 삼색볼펜, 형광펜, 유성매직, 만들고 싶은 것의 복잡성이 커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필요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도움을 구하고 사회를 이루는 무수한 과정이 지금 세상을 만든 것일까, 지금 이 무서운 발전 속도의 원동력은 더 많은 사람들을 서로 만나게 해 지구촌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낸 과연 3차 산업혁명이었구나 싶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만들 수 없는 것을 쉽게 입고 내가 구할 수 없는 재료로 만든 것을 쉽게 먹고 듣도 보도 못한 물질들로 지은 집에서 잠을 자고, 인류가 까마득히 오랫동안 이 땅에 살았다는데 단 몇 백 년 만에 이런 세상을 이뤘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 누가 나라는 캐릭터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가능해져 가고 모든 것이 쉬워져 가는 하나의 설정으로.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인간이 돈을 수단으로 자급자족 흉내를 낼 수 있는 무수한 재화와 시스템이 두렵고 생소했던 아침 생각 끝에는 약간 하얗게 질렸다. 구석기에서 온 얼빠진 얼굴과는 대조적인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버스 벨을 눌러 쨍하니 울리는 소리로 내려달라는 말을 대신하고 자동으로 문이 열린 버스에서 내려 보도블록을 밟고 하얀 줄이 그어진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 불이 켜지자 줄 맞추어 멈춰 선 자동차들 앞으로 길을 건너고 투명하게 안이 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와 위쪽으로 향한다는 표시의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타 땅으로부터 무려 23층, 내 회사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