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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Aug 24. 2019

'슈퍼히어로'의 자격

논란의 조국 후보…그는 검찰 개혁의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연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뉴스 지면을 뒤덮고 있는 가운데 오늘 아침(24일)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국 후보자를 법무장관에 임명시켜달라는 국민청원이 25만 명을 돌파했다는 내용의 기사다.  

    

해당 청원을 등록한 이는 “조국은 국민이 지킨다. 청와대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드시 해달라”며 조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로 “권력기관 구조 개혁, 검찰개혁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국민들이 느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또 그가 법학자로서 검찰 출신이 아니어서 소위 검찰에 진 빚이 없다는 점 등을 지지 이유로 들었다.      


예비 법무장관으로서 조 후보의 실력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민정수석 시절 숱한 인사검증 실패 사례를 들며 그의 실력에 의문을 표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위의 청원인처럼 “검찰개혁에 대한 소신과 실력, 힘을 두루 갖춘 그가 법무부 장관이 되는 것을 두려워했던 일부 검사들이 한숨 돌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한겨레신문 8월 24일 2면)라며 조 후보가 누구보다 실력을 갖춘 후보라고 주장하는 쪽이 맞서고 있다. 일단 능력과 자질에 대해선 괄호로 남겨두자.

     

현재 조 후보자의 임명을 두고 논란이 되는 부분은 실력이 아닌, 자격이다. 행정부 내에서 법을 관장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왔느냐는 것이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딸의 의학논문 제1저자 논란은 도덕적 문제라고 치부한다 해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가며 가족 전용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자신이 이사로 있던 사학재단이 가족의 사금고(私金庫)로 이용되는 것을 최소한 방치 혹은 묵인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그가 다른 장관도 아닌 법무부 장관이 되기 충분한 자격이 있다보기는 힘들 것 같다.

      

실제로 조 후보자가 임명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지금까지 드러난 의혹들이 모두 ‘가짜 뉴스’라고 믿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이러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 후보자가 법무장관에 취임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왜 조국이어야만 할까.   




조 후보가 반드시 법무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가 법무부장관직을 수행할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적임자란 단순히 “소신과 실력, 힘을 두루 갖춘” 수준을 넘어 영화 속 ‘슈퍼히어로’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조국 후보 임명을 지지하는 쪽에선 검찰이나 자유한국당이 조 후보 임명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를 임명하지 못하도록 물고 늘어진다는 주장을 편다. 마치 영화 속 악당에 해당하는 검찰과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조국이 법무장관만 되면 너희들 다 죽었어”라고 일종의 경고를 날리는 셈이다.


요즘엔 슈퍼히어로들도 고전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슈퍼히어로가 주는 최고의 쾌감은 '쾌도난마(快刀亂麻)'식 사태 해결이다. 우리 편이 밀리는 상황, 혹은 팽팽한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등장한 슈퍼히어로는 단칼에 적들을 제압한다.


마찬가지로 슈퍼히어로 같은 법무부 장관이 등장해 그동안 그 어떤 대통령도 손보지 못했던 악당 검찰과 만년 기득권의 온상, 요즘 식으론 ‘토착왜구’인 자유한국당을 혼내주길 기대하는 심리가 조국 후보지지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슈퍼히어로가 나타나 악을 응징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지고 속 시원한 일인가.      


하지만 중요한 건 정말로 조국이 이들이 그토록 찾아 마지않던 슈퍼히어로가 맞느냐는 거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는 실력과 품성이 이미 검증된 이들이다. 아이언맨이 비록 한때 바람둥이이긴 했지만 누구보다 힘이 세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할 것이란 점을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악당이 속세를 헤집고 다닐 때 아이언맨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들은 안심하고 목놓아 응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조국 후보는 어떤가. (법무장관으로서의) 능력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우리 편(힘없고 약한 자들 편)이라는 확신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상당 부분, 아니 거의 절대적으로 퇴색해 버렸다. 그런데도 이런 인물이 슈퍼히어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설령 조국 후보가 슈퍼히어로에 가까운 인물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의혹만으로도 그가 슈퍼히어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긴 어려워 보인다. 영화 속 슈퍼히어로는 태생적으로 혹은 특별한 사건을 통해 '초능력'을 부여받지만 현실 속 슈퍼히어로의 힘은 '권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권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권위'가 뒷받침돼야 한다. 권력은 결국 구체적으로는 인사권에서 나온다. 인사를 잡음 없이 밀어붙이기 위해선 대내외적으로 인사권자의 권위가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좌천당한 사람은 찍소리 못하고, 승진한 사람은 주변의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돼 개혁을 추진하는 권력자의 날 선 칼이 되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조 후보의 권위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어느덧 '내로남불'의 대명사가 돼버린 조 후보가 장관이 된다 한들, 그가 추진하는 정책과 명령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가 슈퍼히어로가 되어줄 것을 기대하고 그를 지지하는 것이라면, 안타깝게도 지금의 조국은 '크립토나이트'에 노출된 슈퍼맨 신세가 돼버렸다. 슈퍼히어로의 역할할 수 없단 얘기다.




예전의 슈퍼히어로는 슈퍼맨처럼 혈혈단신(孑孑單身)이었다. 슈퍼맨 말고는 대안이 없었단 얘기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어벤저스’처럼 슈퍼히어로들이 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아이언맨이 없으면 토르도 있고 캡틴 아메리카도 있고 10대인 스파이더맨도 있다. 아이언맨이 잘 싸운다는 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가 없을 때를 대비한 플랜 B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지구를 지켜낼 수 있다. 하다 못해 영화 ‘넘버 3’의 조폭 두목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재떨이’라는 별동대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가.      


정부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가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 그건 그만큼 정부의 인재풀이 제한되고 정부의 인력운용이 편협하다는 걸 자인(自認)하는 셈이다. 현 정부와 지지자들이 조국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나머지 사람들은 조국을 슈퍼히어로라고 인정하기는커녕, ‘그렇게 사람이 없나’라고 의아해하게 된다. 더구나 ‘나 혹은 쟤 아니면 안 돼’라고 하는 건 지나친 선민의식(選民意識)이자, 민주주의의 원칙과도 맞지 않다.

      



현실의 풍파에 시달리다 보면 누구나 마음속 한편에 슈퍼히어로를 품고 살게 된다. 언젠가 슈퍼히어로 같은 인물(그게 정치인이 됐든, 직장 선배가 됐든)이 등장해 현실의 부조리를 해결해주고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거란 기대를 누군들 하지 않겠는가.

한때 DJ와 YS,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랬고 근래엔 야인 시절의 안철수씨와 취임 초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다. 하지만 마음속 슈퍼 히어로가 현실에 때를 묻히는 순간, 사람들은 그 또한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란 사실을 깨닫고 또 다른 영웅을 찾아 나선다.      


지금 누군가에겐 조국 후보가 핍박받는 슈퍼히어로로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얼른 와이셔츠를 찢고 (슈퍼맨이 입는) 'S'자 티셔츠를 드러내 주길 기대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속 슈퍼히어로는 어디까지나 가변적(可變的) 존재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 사람이 맞는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놓고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이어야 한다"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조국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좀 더 상식적이다. 조국은 슈퍼히어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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