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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Oct 01. 2019

'가짜 뉴스'를 온몸으로 막는 사람들

"특종을 열 번 하는 기쁨보다 한 번의 오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신문은 소프트웨어 산업일까, 하드웨어 산업일까?'


인터넷에 연결되는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뉴스를 유통시키고, 1인 미디어가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날아다니는 시대에 '이 무슨 황당한 질문이냐'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컴퓨터를 만들면 하드웨어, 컴퓨터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소프트웨어다. 마찬가지로 유형의 기계가 아닌 무형의 기사를 만드는 신문은 마땅히 소프트웨어 산업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라고 답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를 직접 본 사람이라면 상기한 질문에 잠시 머뭇거릴지도 모르겠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400~500배쯤 확대해 놓은 듯한 거대한 종이가 롤러를 통과하며 내는 굉음에 귀가 먹먹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순백의 지면에 컬러로 인쇄된 다음 날 신문이 나오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거대한 종이뭉치가 수송용 로봇카트에 의지해 옮겨 다니는 모습은 언뜻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을 실은 로봇카트가 움직이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 신문을 찍어내는 '윤전기((輪轉機)'는 거대한 기계장치다. 수습기자가 되어 신문사 지하에 있는 윤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난생처음 구경하던 날 (그 이후로 한 번도 그 모습을 다시 본 적은 없다) "내가 제조업체에 취직했나"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실제로 대당 수 백억 원 이상을 호가하는 윤전기는 신문사 회계장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정자산이고, 이런 윤전기에서 매일 뽑아져 나오는 종이 신문은 신문사란 제조업체가 생산해내는 물리적인 생산품인 셈이다.




기억 속에 희미하게 인쇄돼 있던 윤전기에 대한 추억을 다시 끄집어낸 건 신문사 1면 편집기자가 쓴 <23시30분 1면이 바뀐다>의 에필로그 부분을 읽으면서다. 신문을 찍어내는 둘둘 말린 종이뭉치가 폭 1.6m에 길이가 20Km에 달하며, 무게가 무려 1.4톤에 달한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책에서 묘사한 신문사의 익숙한 풍경에 웃음이 나면서도 이 시점에 유독 눈이 갔던 대목은 '가짜 뉴스'를 다룬 부분이었다. 사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세간에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요즘, 저자는 신문사가 마감을 코앞에 둔 긴박한 순간에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뉴스에 어떤 식으로 대응해나가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책에서 예로 든 사례는 지난 2017년 2월 북한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암살된 직후 SNS를 중심으로 회자됐던 그의 아들 김한솔의 말레이시아 입국 소식이다. 한국 시각으로 이미 늦은 밤, 낮동안 SNS에서 흘러나오던 소위 '썰'(說)이 세계적인 통신사인 로이터와 현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하고, 결국  일부 국내 언론사들도 이를 기정사실화하는 뉴스를 내보내기 시작한다. 만약 사실인데 이를 보도하지 않으면 다음날 아침 신문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이었다. 국제부 야간 데스크가 건넨 영문 기사에는 '현장서 그랬다 카더라'는 말뿐, 누가 어떤 식으로 전했다는 내용이 없었다. 현지 매체는 메신저에 떠도는 출처 불명의 소문을 속보로 내보내고, 로이터는 그 속보를 받아 기사를 전송하고, 현지 매체는 로이터의 보도를 인용해 다시 속보를 띄우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 보도를 한국의 매체들이 받아 방송으로 인터넷으로 퍼 나르고 있었다. 또 다른 글로벌 통신사인 AP와 AFP는 관련 소식을 일절 보도하지 않고 있는데도 말이다.

<23시30분 1면이 바뀐다>  94P


당시엔 아직 피살자가 김정남이란 것조차 공식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인 김한솔이 시신 확인차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대단히 기사 가치가 높은 뉴스다. 더구나 이런 보도는 오보로 판명되더라도 (당사자인 김한솔 정도를 제외하면) 사실상 책임을 추궁할 사람이 없다. 게다가 이미 세계적인 통신사인 로이터가 사실로 보도했기 때문에 국내 언론사 입장에선 나중에 오보로 결론이 나더라도 할 말이 있다. "우리는 '로이터가 보도했다'고 명시했다"라며 '면피'할 명분이 있었던 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국내 언론사들은 이를 로이터를 인용해 신중하게 보도하거나 (김한솔이 입국했다는) 설(說)이 있다는 정도만 언급하고 넘어갔다. SNS상에서 각종 설과 지라시가 급속히 확산되와중에도, 적어도 '게이트키핑'이 살아있는 언론사들은 취재기자들이 추가 취재에 나서 확인할 수 있는 데까지 확인하고, 데스크가 신중에 고심을 기한 끝에 결국에 가짜 뉴스로 판명된 뉴스를 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가짜 뉴스라는 말을 너도나도 너무나도 쉽게 하지만 기자에게 '오보(誤報)'를 내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은 없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사내에서 인사 불이익이나 징계를 당하는 사유가 될 수 있고, 회사 입장에선 문제의 기사가 언론중재위에 제소되거나 명예훼손 같은 형사고소를 당하는 일까지 감수해야 한다. 특히 명예훼손의 경우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패소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일 경우엔 승산이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오보를 했다는 건 그 기자의 신뢰성에 물음표를 남기고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오래도록  달릴 수 있는 일이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까지 있다.

이러한 직간접적인 이유들로 인해 저자가 얘기한 것처럼 대부분의 기자들은 특종에 대한 열망보다 오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소심한 편집자인 나로서는, 미래의 어느 밤에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같은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 식의 특종을 열 번 하는 기쁨보다 한 번의 오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오보의 공포는 언론사의 영향력과 비례한다. 쌓아온 신뢰의 높이가 높을수록 무너질 때의 충격 또한 큰 법이다. 신뢰의 잔해에 깔리지 않기 위해 기자들은 기사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날 밤 식은땀을 흘리긴 했지만 신뢰의 탑은 건재했다. 가짜 뉴스를 내보내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23시30분 1면이 바뀐다> 98P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기자들이 때론 정파적 이익을 위해 일부러 오보를 내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그 같은 주장의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기사의 가벼움을 얘기하지만 진짜배기 기자들은 자기가 쓰거나 손 본 기사가 가진 무게 때문에 기사를 내보낸 이후에도 혹시라도 누가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까, 내가 모르는 팩트가 있었던 건 아닐까 노심초사한다. 외견상 비쳐지는 오만하고 강단있는 인상과 달리 다수의 기자들은 마음 한 구석에 소심함을 감추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자실에 출근하면 출입기자들이 마주 앉아 조간신문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기자실에서조차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그날 아침에 배달된 일간지들이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채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익숙해졌다. 기자들조차 종이 신문을 외면한 지 오래라는 증거다. 종이신문을 찍는 신문사에 다니는 기자들조차 어린 기자들일수록 종이신문보다 인터넷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신문이 외면받는 시대에도 신문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제조업 특유의 '장인(匠人)정신'이 살아있다. 종이신문이 여전히 제조업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신문사란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뉴스 생산직 직원들은 내일 아침이면 이미 인터넷상에서 구문(舊聞)이 돼버릴 기사일지라도 '찰나'의 순간이나마 빛을 발하도록 문구를 다듬고 제목을 바꾸고 때론 윤전기를 세운다.

 

'김한솔이 말레이시아에 도착했다'는 팩트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담당 기자가, 부장이, 특파원이, 때론 편집국장이 밤 11시, 12시에 취재원에게 전화를 건다. 막상 상대방은 기자의 전화를 받아야 할 의무도, 사실을 말해줘야 할 이유도 없다. 그래도 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오보가 나올 확률이 0.1%쯤 줄어든다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만족한다. 그 작은 차이가 자기가 속한 신문사를 좀 더 명품에 가깝게 만든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잘못된 보도는 금세 알려지고 금세 기레기란 딱지가 붙지만, 어렵게 막아낸 오보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은 고심의 흔적을 알아채지 못한다. 어쩌다 베스트셀러와는 거리가 먼 전현직 기자들의 저서를 통해 후일담으로 소개될 뿐이다. 중국의 명의 '화타'보다 훨씬 뛰어난 의사였다는 화타의 형님들이 병이 발현되기도 전에 병을 고치거나 진즉에 예방한 까닭에 그들의 의술이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네 삶이 그렇듯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갑론을박(甲論乙駁)에 무심하다. 아니 신경쓰고 일일이 대응할 시간이 없다. 밖에서 '가짜 뉴스'니 '기레기'니 기사와 기자를 매도하는 언어가 횡행하는 상황에도 자신이 맡은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순간순간 노력할 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신문에 미래가 있을까' 불안하다면, '다른 일을 택해야 했는데' 회의가 든다면
자신이 만드는 신문이 인쇄되고 있는 곳을 한번 찾아가 보길 바란다. 가서
종이의 가능성을, 인쇄의 무거움과 자신의 가벼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주영훈 <23시30분 1면이 바뀐다> 에필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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