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사이에선 특종과 관련한 농담이 있다. "(취재원에게) 하나만 달래서 한 도꾸다니(단독 기사)가 가장 순도(純度)가 높다"는 것이다. 풀이하자면 정보를 쥐고 있는 출입처 취재원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단독 기사가 될 만한 기사 거리를 읍소해서 얻어낸 경우의 단독 기사가 특종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얘기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기자 사회에서 인정 받는 특종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 좀 다르다. 보통 특종상의 중요한 기준이 해당 기사를 얼마나 많은 타 언론사에서 받았느냐(사후에 보도했느냐)이기 때문이다. 특정 언론에 단독 기사가 나가면 그 외 언론사들은 소위 '물'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출입처 기자들은 그 기사를 어떻게든 '오보'(誤報)로 치부하려 한다. 이때 해당 출입처에서 '이 기사는 사실과 다르다'는 식의 공식 해명자료를 내주면 금상첨화다.
단독 기사로 인해 난감해지는 건 출입처도 마찬가지다. 그 기사가 보도되면 곤란해지는 민감한 내용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언젠가 공개할 내용이었다고 해도 '왜 저 언론사에만 단독 기사를 줬느냐'는 다른 기자들의 항의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독 기사가 나간 후 출입처에서는 열에 아홉은 '아직 검토 중인 사안이 아닙니다'라는 식의 해명자료를 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다.
하지만 보도내용이 어차피 공개할 수밖에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기사가 사실이라고 인정하기도 한다. 취재원이 맘먹고 제보한 경우라면 인정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물 먹은 언론사들도 기사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 내용이 정말 중요하다면 다음날 신문에 관련 보도를 받아 쓸 수밖에 없다. '단독'이 '특종'으로 격상하는 순간이다.
상기했듯이 단독 기사는 출입처 입장에서도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취재원이 자진해서 알려주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적극적으로 제보하는 취재원도 있지만, 정부 부처나 기업 취재원들의 경우 후폭풍을 우려해 특정 언론에 단독으로 제보하는 경우는 몹시 드물다. 개인적인 친분을 무기로 졸라서 얻어내는 특종은 '순도'는 높지만 '빈도'는 낮다는 얘기다.
따라서 대개의 특종은 기자의 집요함이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려면 기자는 먼저 야마(기사의 주제)를 세워야 한다. 즉, '이 사안은 이럴 것이다'라는 가설(假說)을 세운 뒤 이를 입증하기 위한 취재에 들어가는 것이다.
'취재'란 거창한 게 아니다. 내용을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알 만한 후보군을 대상으로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물어보다 보면 다양한 반응이 나오게 된다. 대부분은 '자신은 모른다'(때론 알면서도)고 하기 마련이고, 명확하게 '사실이 아니다'(가끔 대놓고 거짓말을 하는 취재원도 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드물지만 쿨하게 인정하고 부연설명까지 해주는 경우(내심 자신도 상부의 방침에 불만이 있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누구도 속시원히 얘기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가설이 맞는지 여부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갖고 판단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자신의 가설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마땅히 기존 가설을 폐기하거나 수정해야 한다. 취재원의 반응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자신의 가설을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는데, 상당수 '오보'가 이런 식으로 탄생하게 된다. 어찌 보면 오보와 특종은 한끗 차이다.
한미 정상간의 통화 내용을 유출해 논란이 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사태를 보면서 우선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강 의원이 집요하게 취재원을 물고 늘어졌다는 것이다.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알려진 주미 대사관 소속 K참사관은 변호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5월 방한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방한이 무산될 가능성보다는 성사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는 설명을 하였으나 강효상 의원은 강하게 부정했다. 이렇게 5분 가까이 통화하는 동안 강효상 의원이 참고만 하겠다면서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지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또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강 의원이 참고만 하겠다며 정상간 통화 결과의 방향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뭐가 있냐고 물었고 결국 "통화 요록의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했으나 예정된 업무 일정을 앞두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설명하다가 실수로 일부 표현을 알려주게 되었다"고 말했다.
결국 강 의원이 '트럼프의 방한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을 세우고 취재에 들어간 결과, 취재원으로부터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이란 새로운 '팩트'를 확인하게 된 셈이다. 다소 무리하게 취재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취재 내용 자체는 '사실'이었다. 기자적 관점에서만 보자면 강 의원은 취재원을 물고 늘어져 제대로 된 '팩트'를 건져올린 것이다.
강효상 의원은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다. 기자 시절 주로 경제부처를 출입하며 특종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국장 때는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을 단독 보도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특종을 많이 했다고 꼭 좋은 기자인 것은 아니다. 그가 한 숱한 특종이 우리 사회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자 중앙일보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한미 정상간 통화유출 사건은 "강효상 의원의 사리사욕에 (K참사관이) 당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취재 과정만 놓고 보자면 강 의원의 취재는 훌륭했다. 특히 보좌관들이 힘들게 받아다 준 자료만 갖고 생색내고 호통치는 데 익숙해진 웰빙 국회의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중에 자신이 생각하는 정부 실정(失政)을 확인하기 위해 (보좌관을 시키지 않고) 직접 타국의 취재원과 수 차례 통화하며 집요하게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또 기자들조차 우라까이(다른 기사를 짜깁기하는 것)가 떳떳한 취재 기법(?)인 것처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요즘 세태에 신문사 편집국장까지 지낸 국회의원이 이국 땅에 있는 취재원을 상대로 집요하게 취재하고 있다는 점은 새겨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든 취재가 보도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일선 취재 기자들이 어렵게 취재해 온 내용이 팩트를 담고 있다 해도 기사의 적절성을 따져보고 과연 기사가 되는지, 이를 보도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 건 데스크다. 데스크는 정무적 판단을 하는 자리고, 데스크의 정점에 있는 자리가 강 의원이 역임한 신문사 편집국장이다.
강 의원 본인 주장처럼 "일본에 오는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을 오라고 초청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이런 상식적인 내용은 기사가 안 된다. 보도할 가치가 없단 얘기다. 그걸 굳이 기밀사항인 정상간 통화내용을 유출하면서까지 공개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K참사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만 참고하겠다고 하고 이를 공개한 건 취재 윤리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이번 사태에서 취재 기자로서 강 의원은 훌륭했다. 하지만 내부 정보보고 거리를 특종인 양 보도해 논란을 자초한 강 의원의 정무적 판단은 어리석었다. 자신이 직접 취재한 팩트를 놓고 특종 기자 강효상과 편집국장 강효상이 갈등을 빚었을 것이다. 어렵게 건저올린 팩트를 썩히는 것이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국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에게 보다 필요한 감각은 취재기자로서의 뚝심이 아니라 편집국장으로서의 정무적 판단력이다.
성공적인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선 신문사 편집국장과는 또다른 방식의 선구안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과도한 특종 욕심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