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모순』

견딤의 윤리와 불가능한 선택의 시대

by 최은

어떤 문장은 시간을 건너 살아남는다. 양귀자의 『모순』이 그렇다. 1998년 IMF 외환위기의 그림자 속에 출간된 이 소설은, 2025년 우리에게도 여전히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모순』은 ‘안진진’이라는 한 여성의 생을 따라가며, 개인의 내면과 구조적 억압이 맞물리는 지점을 응시한다. 나는 이 소설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철학적 물음과 사회적 의미를 성찰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사랑과 결혼, 가족과 사회를 축으로 전개되지만, 그 내부에는 여성의 존재론과 시대적 윤리가 응축되어 있다. 진진은 삶의 굴곡을 통과하며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표면적으로는 성장서사의 형식을 취하지만, 그 정서를 지배하는 것은 변화가 아니라 ‘견딤’이다.

안진진이라는 이름은 상징적이다. ‘진실’을 뜻하는 이름을 지녔지만, 그녀의 삶은 그 이름을 끊임없이 반박한다. ‘안’이라는 성과 결합된 이름은, 구조적 억압의 경계에서 진실을 품고 살아가는 이의 모순적 위치를 암시한다. 진진의 삶은 단순한 개인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주체로 존재하려던 여성들의 집단적 초상이다.

제목 ‘모순’은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이 소설에서 모순은 존재의 본질이자, 개인의 선택을 제약하는 사회구조의 다른 이름이다. 양귀자는 이를 결함으로 보지 않고, 세계를 견디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진진의 딜레마는 표면적으로 두 남자 사이의 감정적 선택처럼 보인다. 그녀는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김장우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이고 계산적인 나영규를 지워내지 못한다. 이 선택은 단순한 심리적 갈등을 넘어, 사랑이 생애 설계 속에 어떻게 편입되고, 감정이 조건과 자본에 의해 수치화되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의 반영이다.

김장우는 예술적 감수성과 동시에 경제적 불안정을 체현한다. 그의 ‘순수함’은 1990년대 현실 앞에서 곧 생계 능력의 부재로 읽힌다. 반면 나영규는 안정과 합리성을 제공하지만, 사랑을 조건화하고 감정을 거래 가능한 자원으로 환원하는 도구적 이성을 드러낸다.

중요한 것은, 진진의 선택이 ‘누구를 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의 삶이 남성의 계급과 경제력에 종속되는 구조 그 자체가 문제다. 김장우를 택하면 어머니의 가난을, 나영규를 택하면 이모의 침묵을 반복하게 된다. 선택은 자율처럼 보이지만, 그 바깥에는 결혼을 통한 생애 설계라는 전제가 놓여 있다.

그러므로 진진은 아무리 고민해도 ‘정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녀가 “온 생애를 걸겠다”고 다짐할수록 사랑은 흐려지고 조건만이 선명해진다. 이것이 양귀자가 포착한 1990년대의 잔혹한 진실이다. 사랑은 순수한 감정이 아니라, 계급과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기제가 된다.

이 소설의 특별함은 모순을 격렬한 분노로 폭발시키지 않는 데 있다. 양귀자는 균열을 과장하지 않고, 감정의 과잉 없이 섬세하게 관찰한다. 진진은 무너지지 않지만 완전히 극복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살아내는 태도로 삶을 끌어안는다. 이 조용한 수용의 윤리가 『모순』의 정서적 중심이다.

진진의 어머니와 이모의 서사는 이 윤리의 입체성을 보여준다. 일란성 쌍둥이 자매는 중매결혼이라는 갈림길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어머니는 주정뱅이 남편과 가난 속에서 자식을 키우며 버텼고, 이모는 안정된 삶 속에서 “무덤 속에 사는 기분”이었다고 고백하며 생을 마감한다.

두 삶 모두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들을 병치하는 데에는 균형주의의 함정이 있다. 현실은 언제나 기울어져 있다. 어머니가 보여준 생명력은 경이롭지만, 그것을 다른 이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현실에서는 무너진 ‘어머니’가 ‘이모’보다 더 많을 것이다.

따라서 ‘견딤의 윤리’를 승인하면서도, 그것이 언제 구조적 폭력을 은폐하는 언어가 되는지 경계해야 한다. 견딤을 보편타당한 윤리적 명제로 삼는 순간, 그것은 억압을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한다. 『모순』의 가치는 견딤을 찬미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소설은 견딤이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조건을 드러냄으로써, 그 ‘불가피성’ 자체를 문제 삼는다.

삶은 살면서 버텨내는 것이라는 조용한 진실을 곱씹되, 더 이상 그것이 숙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견딤을 인정하되, 견디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하는 것. 이것이 『모순』이 우리에게 남긴 비평적 과제다.

우리는 진진의 결정보다, 그 결정을 하게 만든 사회적 맥락과 조건에 주목해야 한다. 『모순』은 한 개인의 삶이 아니라, 한 시대의 초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가 아니라, “왜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왜 진진은 결혼해야만 하는가. 왜 인생의 결정을 고작 스물다섯 안에 내리도록 요구받는가. 왜 어느 삶은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결혼이 더 이상 여성의 생애를 규정하는 제도로 작동하지 않을 때, 진진은 비로소 그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때 진진의 선택은 ‘불가능한 선택’이 아니라 진정한 자율적 결정이 될 것이다.

1998년의 선택이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였다면, 2025년에는 ‘결혼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지가 추가되었다. 범위는 넓어졌지만, 각 선택에 수반되는 조건들은 더욱 복잡해졌다. 결혼을 택하면 경력 단절과 가사 노동의 불평등을 감수해야 하고, 비혼을 택하면 사회적 안전망의 공백과 노후의 위험을 혼자 떠안아야 한다.

사랑의 언어 또한 변질되었다. 1990년대의 사랑은 계급과 충돌했지만, 여전히 ‘사랑’이라 불릴 수 있었다. 2025년의 연애·결혼 시장에서 사랑은 연봉·학력·자산 같은 ‘스펙’으로 환원된다. 감정노동, 가사 분담 의지, 육아 참여도까지 정량화되어 평가된다. 사랑은 투자가 되고, 관계는 거래가 되며, 감정은 자기계발의 대상이 된다.

동시에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물리적·경제적 종속에서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데이트 폭력 같은 새로운 형태로 확장되었다. ‘치안 강국’이라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삶은 여전히 불안하다. 역설적이게도, 저출생이 국가적 위기로 규정되는 시대에도 재생산 노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문화적 기반은 빈약하다. 개인의 가능성을 존중한다면서도, 그 가능성을 현실화할 사회적 역량은 부재한 것이다.

2025년인 지금, 나는 스물일곱이 되었고 『모순』도 세상에 나온 지 스물일곱 해가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진진의 어머니는 배우자조차 선택할 수 없었고, 진진은 사랑과 조건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 선택지는 넓어졌지만 모순은 해소되지 않았다. 진진이 두 남성 사이에서 인생을 걸어야 했다면, 오늘의 여성들은 더 많은 선택지 앞에서 더 복잡한 불가능성을 마주한다. 모순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더 정교해지고 더 은밀해졌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순』을 다시 읽어야 한다. 더 이상 회고와 수용의 문학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향한 성찰과 연대의 문학으로. 『모순』은 존재의 흔적이며, 그 흔적을 응시한 자리에서 새로운 태도가 탄생한다.

“내 인생에 내 온 생애를 걸어야 해.” 이 문장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

견딤을 존중하되 견디지 않아도 되는 세계를 만드는 것, 선택을 고민하되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 진진의 모순을 기억하되 그 모순을 반복하지 않는 것.

이것이 2025년, 우리가 『모순』에 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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