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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이라는 이정표

by 훈자까

동경은 이정표이다. 내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살아있는 기분이 든다. 정확한 거리를 체감할 수는 없으나, 현실적인 부분들을 하나씩 채워가는 느낌은 참 뿌듯하게 느껴진다. 과거에 살지 말라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새기며, 추억으로 남은 나의 모습이라도 과거와는 발전된 현재를 상기시킨다. 오늘의 나는 가장 '능력 없는' 내 모습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발전해야만 한다는 약간은 강압적인, 스스로 묶어둔 밧줄은 어느덧 꽤 볼만한 장신구가 되었다.


하루를 살아도 내가 최소한 만족할 만큼은 살아보자고. 동경을 따라가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이 생생하다. 매번 떠올라도 항상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지금보다 훨씬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당연한 장면들이 예상된다. 식습관도, 다양한 경험도, 미래를 위한 어느 정도의 계획도 없었던 대부분의 생활이 허송세월이었기에. 살가죽이 참 두꺼운 나여서 결코 바뀌지 않았을 것 같다.


내면에 몰아치는 것들에 굴복하고 잠재우느라 현실성을 부여잡지 못했던 내 모습은 어둠 속에 갇힌 아이와 같았다. 현실이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만을 바랬던 지난날은 밤하늘을 받쳐주는 초석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참 좋아서, 눈만 성하다면 수많은 곳에서 반짝이는 무한대의 별들을 볼 수 있다. 꺼지지 않는 미디어에서는 눈과 마음을 멀게 한다.


시기와 질투를 의욕과 열망으로 바꿨다. 결국 패배적인 감정은 나를 절대로 바꿀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아주 자그마한 의욕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나둘 동경이 생겨났다. 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의 누군가도, 동경이 되었다.


항상 좌절할 때면 저 하늘의 별은 나를 더 밝게 비춰주었다. 칙칙한 마음과 어두운 생각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그렇게 넘어지는 것을 반복하니, 무릎이 깨지는 내 모습이 익숙해졌다. 고통은 변하지 않았지만 같은 장면을 경험할 것이라는 예상은 가능케 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려는 행동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지금이 실패라면, 또 일어나면 된다. 작은 실패들이 모여 성공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만약 동경의 빛이 너무나도 밝아져서, 나의 눈을 멀게 한다면. 동경이 절망으로 바뀌다고 한들 똑같이 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길이 없어지면 결과를 바라지 않으면 된다. 단지 내가 세운 '동경'이 사라질 뿐, '최소한'이 없어지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슬쩍 밝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별들이 보이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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