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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은 머릿속으로 헤아려도 길다

by 훈자까

불과 며칠 전 밤 열두 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감상에 빠졌다. 물론 지금도 내 귀에 같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기타 선율과 애절한 목소리로, 멀어져 가는 세월을 붙잡는 그 나이가 바로 서른인 건가. 암만 태연한 사람이라고 해도 한 번은 감회가 새로워지는, 그런 나이이지 않을까.


퇴사한 이후, 당연하게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도. 거기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하지 못하는 내 게으른 모습도. 그래도 나름 최소한 인간답게 살고자 유지하는 생활 패턴도. 복잡해지기 전에 어떻게든 흘러가겠지 하는 마음도. 서른이라는 단어의 중압감이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오늘도 최소한의 인간됨을 위해 펜을 쥐었다. 최소한만을 위해 적는 글이니, 더 확장되지 못하는 거라고 자책하는 마음이 든다. 시리지만 사실인 것을. 한숨보다는, 글을 적는 이곳에 마음을 한 술 더 뜬다.


'글을 왜 적나요.'하고 나에게 물어본다면. 글은 진솔한 마음의 창구이니까. 남들에게는 쉽게 말하지 못해도, 토해내듯이 적은 내 사실이고, 역사이니까. 작디작은 것들이라도 세상에는 이렇게 살다 간 사람이 있다는, 작은 유언들이라고 생각을 한다.


인생은 나만의 행복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인데, 그래도 꿋꿋하고 고집스러운 가치관은 하나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간에, '저는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취미로만 남겨야 하는 어느 정도의 쓸쓸함과 따라오는 아집이 있어서. 무엇보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진 '꿈'이었고,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라서. 이게 내 행복이었으니까. 그리고 서른이라는 감상을 한 번 적어 내리기 전에, 먼저 헤아렸다. 어느 정도의 준비운동은 필요할 것 같아서.


너무나도 길더라. 서른을 머릿속에서 숫자를 세어도, 족히 일 분은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숫자를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그 해 당시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는 어릴 적부터, 숫자가 높아질수록 먹어가는 나이처럼 회상도 빨라지더라. 덜컥 더 세버리다간 나이를 먹나 싶어서 급하게 멈췄다.


또 오늘을 돌아보니 꽤 괴로운 날이었다. 밤하늘의 빛무리는 희미해졌고, 무기력하게 흘러간 하루였다. 그래도 글을 적으니 정신이 조금은 되살아난 것 같다. 서른 즈음에를 뭉클한 감상으로 받아들이던 날로부터 벌써 5일이 지났다. 무섭도록 빠른 시간에 헛헛한 한숨이 나온다.


소시민적인 삶을 추구해도 항상 대비되는 현실적인 욕망에 괴로워하는 내 모습의 중도는 언제쯤 안정적이게 될까 괴로운 고민이 선다. 퇴고 없이 쏟아낸 이 글의 문단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내 마음들이 손잡아 이어져있다. 끊이지 않는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또 끈끈함 보다는 모두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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