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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에 튀긴다는 건

by 훈자까

나이 서른이라고 이제는 좀 점잖아진 줄 알았다. 진심으로. 어떤 충격이 가해져도 별빛이 꺼지지 않는 밤하늘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그런 느낌이자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부처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심지를 가진 듯했다. 다분한 착각이었다.




사람답게 지켜오던 루틴이 어머니와의 약간의 언쟁 거친 뒤에 거세게 흔들렸다. 강도가 큰 것은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무덤덤하게 넘기거나 오히려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허무해졌다. 그간 지켜오던 루틴부터 시작해서 끊을 수 없는 생각들의 향연조차, 물 가득 머금은 솜처럼 바뀌었다. 너무나도 무거워서 의욕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뜬 눈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말은 문체적, 문학적 표현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한 말이었다. 그 사실을 그날에 알게 되었고, 내 상태는 마치 땅바닥에 닿기 직전의 낙하하는 공과 같았다. 깎인 감정의 절벽이랄까. 매달리지 못한 수많은 것들이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초췌해졌다. 그리고 감정선이 갈라지고 메말랐다. 또 상대방들과 유지하던 나의 영역이 조금 거칠어졌다. 무수한 상대방들을 더욱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눈빛이 마치 살얼음 같았다. 반사된 두꺼운 거울을 뚫어버릴 듯이, 그리고 당연하게 나도 폭삭 무너져버릴 것이었다. 울음보다는 와그작 찡그린 얼굴이지 않았을까. 깨진 것들은 수렁에 떨어져 마치 박힌 대못들처럼 나를 또 아프게 할 것이 뻔했다.


잘그락거리는 아픈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걷지 않을 수는 없으니. 멈추면 썩는다.


'정신적 고통은 더 큰 육체적 고통으로 잊는다.'는 문장이 있다. 웨이트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참이자 진리처럼 여겨지는 말이다. 후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어느덧 한 해가 지나면서 4년 차가 되었다. 주위 지인 중에서 누구보다도 더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감내를 넘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였고, 동경을 위한 길에서 명백한 운동화와 같은 존재랄까. 없어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의 존재였다.


나는 단 한 번도 마음의 심란을 물리적인 고통의 초월로 이겨내지 못한 적이 없었다. 단언할 정도로, 나에게 '선(先) 고통'은 그만한 결과와 가치를 항상 가져왔었는데. 이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전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거세게 바람이 분 건 아니었으나, 가뭄이 사라지지 않았다. 메마른 땅은 그대로 황폐했고, 진정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람이 급격하게 평소와 달라지면 겁이 난다는 말이, 바로 지금이었다.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사라진 의욕에 흘러가는 대로 스스로를 맡기기로 했다. 통제하려고 하면 더 이상 온전한 회복이 안될 만큼 무너져버릴까 봐, 최대한 사리기로 했다. 무의식에 유영하던 중 내 우연한 환상향이 보였다.


서울. 극히 아련한 그곳의 풍경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계획보다는 이끌리는 대로 결정했다. 당장 이번 달에.


어차피 아플 거면 모든 걸 게워내듯이 아프고, 가장 강하게 튀어서 침침한 수면 위를 뛰어오르자. 땅바닥에 튀긴다는 건 결국 다시 튀어 오른다는 것이니. 그 폭발적인 도움닫기에 나의 허무도, 두려움도, 시간도 아낌없이 갈아 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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