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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Jun 19. 2021

시작점을 만나게 해 준 사람

내가 만난 사람들 #01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현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본다면, 당신의 지나온 수많은 길목들의 첫 시작점은 어디인가요. 시작점이라고 칭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셨나요. 아니면 시작점이라는 게 불분명한가요. 아, 뭔가 나는 저때부터 내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 그런 느낌을 받는 곳이 바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시작점을 명확하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찰나에도 수많은 생각과 기억이 얽히는데 어떠한 짙은 점을 찾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시작점은 어떠한 곳보다 가장 진한 채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확실한 계기로 그려진 내 시작점을 만나게 해 준 사람, 내가 만난 사람들의 시작이자 첫 번째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이 바라는 가치관과 꿈을 시작하게 해 준 사람은 학창 시절 학원 선생님이셨다. 당시 성적 향상을 위해 들어간 학원에서 만난 선생님이 내 인생의 은인이 되셨다. 어떤 식으로든 첫 만남을 가지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에서 사람과 인연은 어떻게 생길지 누구도 모르는 법이니까. 찰나의 만남이 항상 고마움을 간직하게 해주는 은인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누구보다도 온화한 분이셨다. 워낙 소심했던 학창 시절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신기함을 느꼈다. 당시 내가 속한 반은 말썽꾸러기들이 가득한 반이었다. 우리들이 뿜어내는 과한 유쾌함이 선생님에겐 부담과 스트레스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항상 밝은 미소를 지으셨고 친절함으로 대해주셨다. 마치 살구색 같은 분위기를 가진 분이셨다. 


 그분만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내 마음속에는 존경심이 일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더 나아가 나도 그런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국어를 담당하셨기에 성적도 국어를 가장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국어 자체가 좋아졌고 내 전공도 문과 쪽으로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국어를 좋아하다 보니 글이 좋아졌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내 시작점이 그려진 것이다.


 그렇게 만남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20대 중반, 그 당시 선생님과 똑같은 나이가 되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살구색 분위기를 지닌 사람일까. 나 스스로가 보아도 살구색을 가진 사람일까. 사실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살구색을 바라면서 살아왔고 지금도 그대로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오랜만에 선생님과의 만남이었다. 화창한 오후 우리는 만났다. 오픈된 넓은 창과 하얀색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시간을 가졌다. 선생님의 포근한 살구색 분위기는 그대로 셨다. 나에게 꿈이라는 행복 퍼즐을 건네주신 당신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선생님은 언제가 가장 행복하세요? 가령,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활동이라던가 해서요."


 "최근에 독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더라. 책에 관해서 얘기도 하고 각자에 대한 얘기도 하면서 말이야."


 선생님도 사람과의 만남이 좋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지만, 그래도 뭔가 지금까지 비슷한 면으로 자라온 것 같아 기쁜 마음이었다.


"그러면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할 것 같으세요? 지금껏 교사로 지내오셨는데 선생님께서 했을 때 가장 행복할 것 같은 일이요."


 "나는 학창 시절부터 교사라는 꿈을 가지게 돼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행복한 것 같아. 당장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당장 찾아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도 해온 일이었으니까."


 지금까지 해온 일에 행복감을 느끼신 것에 공감이 갔다. 선생님은 그럴 것 같은 분이셨으니까. 나 또한 제자 중의 한 명이었으니까 말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그러시지 않을까. 제자들이 각자 길을 찾고 성장하는 모습에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나도 선생님께 한 순간의, 혹은 꾸준한 행복감을 전해드렸을까. 선생님과 나라는 관계적인 입장에서 바라본 적이 드문 것 같아서 놀라웠다. 언젠가부터 선생님보단 존경하는 분으로 바라봤었으니까.


 선생님과의 만남은 긍정적인 의욕을 가져다주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사춘기처럼 흔들리는 감정선에 힘들어하던 중이었는데, 밝은 쪽으로 확고하게 돌아선 것 같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으로 선생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더 나은 제자가 되어서 다음 기약 때는 선생님에게 좀 더 행복감을 줄 수 있기를. 또 나 스스로 행복한 살구색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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