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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Oct 12. 2021

차가워지는 날씨를 따라가진 말자

생각 노트 #04

 최근 선선했던 가을 날씨가 한두 발짝 물러난 것 같았다. 선선함을 느끼고 풍요롭고 쾌적한 가을을 기대했던 나는 끊이지 않는 더위에 조금 짜증이 났던 참이었다. 부모님 또한 "훈아, 나만 더운 거 아니지?"라고 하시며 오래된 날씨에 대한 곤혹과 지침을 표현하셨다. 나는 크게 맞장구쳤고, 그날 저녁으로 준비하던 파스타의 오일이 더욱 뜨거워 보였다.




 불과 며칠 전의 주말에 부산을 다녀왔었다. 근 보름이 넘은 시간 동안 백신 접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이유로 긴 외출을 삼갔었다. 기분전환 겸 친한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흠씬 풀기로 했다. 3개월 만에 보는 친구는 얼마 전에 봤던 것처럼 만남부터 익숙한 느낌과 웃음을 나에게 가져왔다. 서로 같은 반응을 보이며 더욱 쾌활한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다.



 

 부산에서의 노고를 바삐 녹이는 오늘이었다. 주말의 행동할 때의 에너지는 이미 방전이었고, 긴 휴식에 들어가자 몸은 큰 피로를 안고 있었다. 더 어릴 때의 나는 일주일에 최소 7번을 외출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조금 과한 나날을 보낸 세월의 결과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에이징 커브인지, 확실한 건 지금은 피로를 쉽게 느끼는 것이었다. 무심코 조금 답답한 탓이었는지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였다.


 편한 차림의 피부가 화들짝 놀랄 정도의 바람이 일었다. 어느덧 창밖은 흐린 구슬비가, 그것보다 한기가 물씬한 공기가 방안으로 금세 웃돌았다. 부스스한 눈이 절로 켜진 나는 기상 알림을 바로 확인했다. 단 하루 만에 바뀐 기온과 살갗으로 부쩍 이 겨울을 느낀 찰나였다.




 선선함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마음 또한 그러한 거 같아서였다. 반대로 자기주장이 강한 두 친구의 긴 나날은 모든 이들이 꺼려하는 점이 존재하는 시기이기에, 내 마음과 정신도 늘어지는 의지박약에 차갑고 딱딱하게 굳기 시작하는 출발선이었다. 과한 여유의 삶을 지내는 나에겐 더욱 파고들 것을 알기에 두렵고 자괴적인 심정이다.




 늦은 저녁의 포장마차의 뜨끈한 음식들과 소주 한 잔, 꼬치구이집에서의 맥주 한 잔이 절로 생각나는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차가움에 반응해 절로 그리고 먼저 따스하고 포근한 것들을 떠올리는 이들이 부럽다. 옷깃을 애워싸는 거리에도 변함없이 따뜻한 마음을 굳건히 가지는 이들을 존경한다.


 작은 가시에도 거세게 토라지는 얇은 내 씀씀이가 미워지는 날이 코앞이다. '사람으로 크게 따스함을 느끼는 나인데, 어쩌겠는가.'라는 대사를 습관처럼 읊조릴 내가 밉다. 연극배우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이겨내고 꿋꿋하게 맑은 심지로 관객에게 감상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럼 제4의 벽 너머 있는 또 다른 내가 활짝 웃으며 고생했다는 격려의 박수갈채를 보내줄 텐데.




 저 멀리 빛나는 별들은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밝은 모습이다. 오히려 차가운 이들을 위해 더욱 밝은 빛을 발산해주는 그들이구나. 빛을 눈에 담은 이들은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를, 세상의 온기를 끌어모으지 않을까. 사실 온전하고 숨김없는 내 성격으로는 하나의 별이 되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가 아니었을까.




 방구석의 거울 앞에 섰다. 굽혀진 날갯죽지를 조금 펴보자. 우득하는 소리와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예민하고 찔렸던 마음의 부스러기가 푸드덕하며 떨어졌다.


 스윽, 부스러기를 불씨로 원시적이고 자그마한 화덕이라도 만들어 보자. 어디 주위에 꿈으로 심긴 고구마는 없을까. 있으면 이것이라도 구워서 주위 사람에게 건네자. 


 별이 힘든 나에겐 소박한 청년의 꿈이라도 갖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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