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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Sep 11. 2021

열기를 밀어내는 가을 녘에

생각 노트 #03


 지금 딱 이 시기, 여름의 열기와 가을의 선선함이 공존하는 때인 것 같다. 끝날 것 같지 않은 무더위, 어느 날 갑작스러운 선선함을 느낀다면 지겨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사람들은 해마다 가지지 않을까. 가을, 얘기만 들어도 드높고 푸른 하늘과 시원한 공기 그리고 바람에서 풍겨오는 특유의 내음을 떠오르게 한다. 사계절을 모두 접할 수 있는 축복받은 환경에서, 우린 어느 계절이 가장 좋다는 평을 심심찮게 내리곤 한다. 그중 가을은 두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사람들의 보편적인 취향에 부합하다고 확신한다.




 며칠 전 오전부터 자연스레 열어둔 방 창문으로 선선한 바람이 나를 찾아왔다. 향긋한 내음은 집안에서의 낮은 텐션에 활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곤 잠깐 외출하여 흑맥주를 사들고 왔다. 치익하는 두근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줄기가 몸속을 타고 흘렀다. 혼자 맞이하는 가을밤은 외로울 법하다. 여름이 가는 소리와 서늘한 기운은 싱숭생숭한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얼마만의 기분 좋은 싱숭생숭함인가.




 '나는 또 이 싱숭생숭한 시기를 만났다. 그간 나는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들로 지내왔을까. 작년 이맘때에 느꼈던 나를 괴롭히는 자기혐오와 자괴감은 얼마만큼 나에게서 물러났는가. 물러나지 않았다면, 나는 얼마만큼 무뎌졌고 인내심이 늘었는가. 지금 이 바람처럼 무심하고도 안타깝게 지나가는 세월에 나는 어떤 것에 기대고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그것들은 나를 어떻게 바꿀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더욱 까슬해지는 면도자국을 스윽 만지며, 까슬해지는 것이 아닌 나의 손바닥이 더욱 부드러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주위 환경, 사람들, 그리고 나. 모두에게 살구빛 분위기를 풍길 수 있을까.'




 어느덧 맥주 두 캔을 모두 비웠다. 소주와는 다르게 청량감이 맴도는 맥주는 순식간에 빈 캔을 만들어냈다. 평소 맥주는 자주 마시지 않아서인지, 소주와는 다른 알딸딸함이 나를 덮쳐왔다. 아직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아 시일 내로 다시 온다면 더위에 다시 무력해지지 않는 내가 되길. 여름의 열기가 거의 다 가셨다면, 게을렀던 나를 돌아보고 가을이 전해준 상쾌함을 소중히 간직하기를. 환기된 나 자신이 소중한 다른 이들과 가을 녘을 바라보는 하루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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