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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Oct 31. 2021

오늘도 회색 동전 두 개를 굴린다

생각 노트 #06

 달그락.


 반가운 인트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학창 시절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빼먹지 않던 이곳, 아기자기한 동전만 있으면 누구든 그날의 가수가 될 수 있는 동전 노래방에 오늘도 왔다.


 겨울로 넘어가는 쌀쌀한 가을,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는 사연 있는 이들이 꽤 있는 걸까. 집 근처 단골인 이곳인데 오랜만에 빈 방을 찾기가 어려웠다. 반가운 당황감이었다. 주위에 인구 분포가 한산한 나의 동네였기에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마치 대학가에 온 듯한 기분이랄까.

 



 좁은 공간에 반듯하게 놓인 가죽 의자, 방금 전에 다른 고객분이 계셨는지 색다른 향수 냄새가 났다. 차트가 나열된 네모난 창과 마이크, 노래방 기계는 정겨운 학창 시절의 느낌이었다.


 근처에 있는 다른 방에서 부르는 노래에 절로 웃음이 났다. 이제는 잊고 있던 추억의 노래들을 많이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노래들을 들으니 향수가 쏴아 밀려왔다. 혼자 방문했지만 향수는 그때의 친구들, 지금의 정겹고 소중한 이들을 생각하게 했다. 잘 지내고 있을까. 그리고 급히 노래를 선정해 마이크를 잡았다.


 게 눈 감추듯 두 장의 지폐가 사라져 있었다. 서두르는 심장 고동과 피어나는 열기에 막힌 가슴을 뚫은 듯, 해방함을 느꼈다.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통쾌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갑자기 익숙하지만 그리운 오랜 친구가 보고 싶었다.

 



 짧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출발하던 때와는 다르게 쌀쌀한 바람은 오히려 선선해진 것 같았다. 밤하늘엔 희미한 별들이 모습을 감추지 않으려는 듯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워낙 소심하던 나를 음악 수행 평가를 이유로 동전 노래방으로 데리고 갔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놀리려는 의도가 아닌, 한 번 불러보면 또 느낌이 다를 거라면서 격려와 응원을 해주던 이들이었다. 이때의 고마운 친구들을 계기로 시간만 맞으면 방문했던 것 같다.


 당시 학원의 저녁 시간, 선생님들 몰래 친구들과 슬쩍 다녀왔다가 한 소리를 들었던 때가 있었다. 혼나면서도 나를 포함한 말썽꾸러기 우리들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친구들과 뭉클한 마음으로 안재욱 님의 '친구'를 불렀었다. 그때의 기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 상황과 노래의 일체감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울먹이는 친구도 있었다. 나도 마음이 뭉클해 노래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참으로 떨어지는 낙엽 같은 때였다. 물들어가는 것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저물어가는 가을처럼, 고등학생의 시기는 그랬었다.


 대학교는 음주가무(飮酒歌舞) 그 자체였다. 어색한 새내기의 친밀감은 술과 노래로 더욱 가까워지는 우리였다. 어색한 이들이 보여주는 색다른 모습들은 그들을 서로서로 확 당기는 매력을 발산했다. 물론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나에게 동전 노래방은 질릴 틈이 없었다. 강의 시간 사이에 비어있는 시간에는 무조건적으로 방문했던 것 같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노래 이야기를 하며 웃음 짓고 다녔던 것도 어느덧 반짝이는 추억이 되었다.


 군인의 신분이 되어서도 부대 내의 동료들과 개인정비 시간에 자주 갔었다. 밖에 있는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고 싶다며 전화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던 나였다. 지금 그 모습을 상상하니 코믹한 점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까까머리의 내가 노래방 가자고 졸라댔던 모습은 친구들에게 여전한 나의 모습으로 다가가 반가움과 안도감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회사를 바삐 다니면서도 휴일에 외출할 때도 꼭 들렸었고, 지금 무기력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한 여유가 밀려오는 삶에서도 종종 방문한다. 뭐가 그리 좋을까. 하나를 콕 집어 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하고 바람 쐬고 싶은 그런 기분. 또는 과거의 애인이 문득 떠올라 안타까움에 젖을 때. 내 마음이 또 한 번 흔들리고 씁쓸함을 느끼면 나는.


 술과 사람으로 풀기 힘든 스트레스가 있을까.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아도 콱 막힌 기분이 풀리지 않을 때, 나는 오늘의 산책을 준비한다.


 사람과 부대끼는 것에 지쳐서 가끔 모든 것에 싫증이 느껴질 때처럼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마음에 툭하고 걸리는 게 있으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내가 있다. 달그락, 오늘도 회색 동전 두 개를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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