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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Nov 20. 2021

단순한 사람이란 뭘까

생각 노트 #07

 절친이 맛있다고 데려온 이자카야는 꽤나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향토 묻은 일본의 포장마차 느낌이랄까. 사장님이 주신 보리차를 시원하게 한 잔 다 비웠을 때쯤, 주문했던 모둠 사시미가 나왔다.


 광어, 방어, 연어, 새우 등의 통통한 회들과 각양각색의 가니쉬, 그리고 소스까지. 테이블 중앙에서 우리는 눈을 떼기 어려웠다. 나는 광어 한 점을 초장에 찍었다. 그리고 기대감에 부푼 사람의 눈빛이 느껴졌다. 맛있었다. 정말로. 음식은 오감으로 먹는다고 했던가. 다른 감각들을 배제하고서 오로지 '미각'만으로도 나는 감탄사를 내질렀다.


 절친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뒤로 너와 먹었던 이전의 회들에 대해 줄줄이 나열하면서, 맛만으로도 여기는 우리의 단골집이 바뀔 것 같다는 평을 내렸다. 맛과 구성, 술집의 분위기까지 삼박자가 잘 어우러졌으니까 말이다.


 우리의 술잔은 거침없었다. 서로 일도 있고 해서 근 한 달만에 봤었던 것 같다. 술기운이 몸에 돌자 최근 들어 생긴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가 대화할 때 일상에서 쓸만한 문장이 아닌 것 같다는 고민이었다. 문체와 어체는 문장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대화 내용과 형식이 문체를 많이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뭔가 어색하거나 오묘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감성적인 사람이야."


 당황스러웠다.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문현답의 표본이었다. 나는 당혹감에 반문했다.


 그러자 친구는 말을 이었다.


 "누가 자기가 말하는 문장을 너처럼 담아두고 고민할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그런데 내가 그런 점을 느꼈으면 바로 너에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배운 거 티 내는 것도 아니고, 과시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고민하는 것도 아니지. 누군가에게 물어볼 만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이유는 바로 너라서 그런 거 같네."


 "난 그렇게 까지는 느껴본 적 없어. 가끔 얘기할 때 문장이 되게 길다는 느낌? 그렇다고 말이 많다거나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야. 네가 길게만 말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 주위에서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판단을 내리는 친구의 말이 내 마음을 울렸다. 단순과 감성의 극단에 서있는 우리가 이만큼 친한 사이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을 지녀서 그런 것일까.


 친구의 진솔한 문장이 며칠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종종 닮고 싶은 너의 모습이 더욱 크게 와닿았던 최근이었다.




 단순한 사람이란 뭘까. 나는 왜 선택의 기로에서 단 한순간이라도 확신 어린 판단을 세우지 못하는 걸까.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이런 고민으로 내 속을 무리해서 후벼 파 본다고 한들 어떠한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끝없는 선택지에 다양한 시야로 읽으려 했던 나의 노력들을 돌아보았다. 사실, 오히려 눈살을 찌푸린 적이 더욱 많았던 것 같다.


 항상 살구색을 닮으려고 했던 나의 주위는 색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살구색이면 뭐하겠는가. 그 사이에 촘촘하게 끼인 마치 기름 같은, 잡념들이 바이러스처럼 기어 다니는 데 말이다. 살색 깊숙이 간직한 밤하늘의 남색에도 반투명이 일렁거렸다. 저기가 때 묻은 기름의 근원지일까. 그곳에는 누런 초승달이 있었다.


 어떤 때는 극빙처럼 차가운 남색을 뿜어내는 내 친구의 질감은 나와 확연히 달랐다. 불필요한 기름 덩어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빠르면서도 잔잔한, 그리고 날카롭고 깨끗한 물살을 지녔다. 그 속에는 봄처럼 포근한 살구색이 있었다. 물론 거기에도 잡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너의 살구색은 나의 것과는 정말 다르구나. 그곳에는 민들레를 닮은 보름달이 있었다.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은 각자의 영역이 확실하다. 섞이지 않아서 위아래를 바꿔가며 서로의 진솔함을 조용히 들어주나 보다. 유하고 강함을 서로 너무나도 잘 아는 우리는 술 한 잔에 다이빙한다.


 찰나의 씁쓸함에 오늘도 싱긋,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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