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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Jan 16. 2022

온전한 나를 위한 기도

생각 노트 #09

'내가 클로이(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한 모든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결렬된다고 알랭 드 보통은 말했다. 교류의 원천인 사랑은 자신과 서로를 더욱 가꿀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인데 왜 이런 문장을 도출했을까.




 나 자신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아는가. 사실 자신의 모든 가치를 하나씩 콕 집어 설명하라고 하면 금방 멍해질 것이다. 자신이 만나는 상대방에 대해서는 하루 종일 골똘히 생각하지만, 평소 자신의 사소한 면까지 서류가방에 들고 다니진 않는다. 그러니 아마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고 써볼 수밖에 없는 글, 그곳에서 구체적으로 나를 한 번 표현할 것이다. 바로 자기소개서이다.


 인생 중 처음으로 자신을 어떤 표현을 통해 상세하게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완벽한 자신일 수는 없다. 자신이 지원하려는 근무처의 특색에 맞게 옷을 억지로 입힐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단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딱딱한 구두를 원하는 곳이라면 나는 자연스럽게 구두를 신는다. 그리고 일과를 마치고 포근한 집에 도착해서야 구두를 앓는 소리와 함께 벗게 된다. 황금을 위한 겉치장은 결국 이 악물고 버텨내는 나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원자분의 이상형은 어떻게 되세요? 연애관까지 해서요.'


 면접에서 절대 물어볼 리 없는 질문들, 평소에 품고 다니는 나의 주된 관심사는 어떨까. 나의 가치를 전부 비춰줄 수 있을까. 온전한 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완벽한 나는 되지 못한다. 일터로 향하는 복장이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옷차림이더라도 그 사람을 생각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물에 보편적으로 투영하는 가치라는 단어는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대입되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

  



 가치란 결국 객관화의 탈을 쓴 가장 강력한 주관에 불과하다. 젖은 지폐 한 장이 있다고 치자. 지폐는 약속된 일정한 가치이기에 우리는 제값을 받을 수 있다고 자연스레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화가 되지 않은 과거의 사람이 현대에 뚝 떨어져 지폐를 주웠다고 치자. 그에게 지폐는 젖은 종이일 뿐이며 돌돌 말아서 무심하게 휙 던져버릴 수 있다. 아니면 빳빳하고 네모난 종이를 더 선호할 수도 있다.


 이처럼 나의 가치도 항상 변한다. 사람, 위치, 환경 등 모든 것에 의해서 나의 모든 것들은 저울질당한다. 마치 항상 경악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으면서도 허황된 믿음으로 투자하는 전자 화폐와 같다. 그러고 가치를 잃는다는 것은 가치가 담긴 저울 한쪽이 끊어져버린 것을 말한다. 자의로 유지해왔던 최소한의 선, 기준이 사라져 버린다는 의미이다.




 사랑은 그만큼 위대하며 모든 가치를 잡아먹는 포식자이다. 그리고 연인 간의 이것이 가장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생선회를 싫어한다. 그러나 관심 있는 이가 회를 미치도록 좋아한다면, 생선회에 대한 그의 가치는 아주 쉽게 묵살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는 사실 하나에 현혹되어 달려갈 것이다. 나 자신의 가치는 사랑 앞에서 확실히 무력하다.


 그리고 연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인간관계는 모두 사랑으로 감싸여있다. 지인, 친구, 내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마음 또한 단연 사랑이다. 자신의 성격을 양보하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모든 감정들을 오르고 올라서, 천장에 서있는 이는 사랑임에 틀림없다.




 바꿔 말해서 사람과 어떤 관계를 가지건 나의 일부분을 버려야 한다. 사람에게 사랑은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사랑이 끝나면 버려진 일부가 돌아올 수 있을까? 자신이 버린 것들은 절대 돌아올 수 없다. 대신 사랑한 시간으로 얻은 새로운 것들이 부족해진 나를 채운다. 알랭 드 보통의 문장에서도 정확하게는 가치가 아닌 '가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당시, 과거의 것이고 가치는 바뀌니 온전한 나 자신이 변했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깊으면 깊을수록 나를 세차게 흔들고 큰 후유증을 남기니 말이다.




 사랑의 경과에 긍정적인 느낌이 많았다면 과거의 나는 '그땐 그랬고, 어렸으니까. 지금은 성숙했지.'라고 표현하고 부정적인 것이 많았다면 후회하고 온전했던 과거의 가치를 그리워한다. 그렇다면 시간은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스쳐가는데 1분, 하루, 1년 뒤의 미래에 존재하는 나는 온전할 수 없는 것일까.


 사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지금의 내가 더욱 온전한 모습일 수도 있다. 지금의 나를 1년 뒤의 나 자신이 바라본 입장에서는 말이다. 사랑이 가장 강력한 감정이라고 한들, 시간을 이기지는 못한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사람이 흔들리는 가장 강렬한 순간을 다채로운 공감으로 그려냈다. 복잡한 감정의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는 끊임없는 시간의 선에서 우리는 항상 온전함을 갈망한다. 사람이 바뀌고 사랑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가도, 상처받기 싫어하고 포근한 것을 바라는 사람의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사랑을 원하고 배신감을 느끼며 시간을 약처럼 삼키고 자신에 대한 절실한 믿음을 가진다.


 가치의 잃음과 반복, 온전했던 나와 더 온전할 내가 그리는 감정의 선율은 멈추지 않는다. 내가 멈춘다고 해서 나에게 관련된 모든 사랑이 끝나지는 않는다. 분명 누군가 슬퍼하고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씁쓸함을 가지고, 어쩌면 그의 가치가 끝맺을 때까지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도 있다.




 그래, 이번은 얼마만큼을 내어주어야 하나요. 5, 10, 50, 혹시 아니면. 내 전부를 내어줘도 상관없다. 절망과 후회에 휩싸여도 된다. 기쁨과 포근함에 푹 절여져도 좋다. 사랑이 지나간 후에 더욱 온전해질 나와 완벽은 아니어도 본능의 끈을 놓지 않는 내 모습을 기대하고, 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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