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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pr 03. 2017

사라지는 것들에 관하여

물건이 없어지고 상실이 생겨났다, 나는 그 안에서 부재를 그리워한다

병원에 있으면서 신사동 집을 정리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월세를 낼 수 없어서다. 엄마와 누나들이 힘을 모아 내 대신 이사를 하셨다. 퇴원을 해 집으로 돌아와 보니 없어진 물건이 많았다. 엄마는 짐이 많으니 필요 없어 보이는 건 버렸다고 하셨다. 무인양품 CD플레이어의 리모콘이 사라졌고, 꼼데갸르송의 체크 패턴 숄더백이 없어졌다. 사놓고 몇 번 듣지도 못한 우타다 히카루의 새 앨범도 보이지 않았고 혼마 타카시의 포스터와 몇 장의 일본 영화 포스터 역시 버려졌다. 내가 쓰던 침대, 소파 등 덩치가 큰 놈들은 다른 이유로 당연히 인천 엄마 집에 오지 못했다. 나의 신사동 시절은 삭제됐다.


두번째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나는 내 지갑이 사라지는 꿈을 자주 꾸웠다. 실제로 없어지진 않았을까 걱정돼 엄마와 누나들에게 자꾸만 물었었다. 최근에 산 옷들도, 태국 출장에서 사온 담요도 혹시나 없어지려 하는 건 아닐까 싶어 불안했다. 자꾸만 사라지는 것들이,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것들이 안탑깝고 안스러웠다. 미국에 있는 친구가 감사하게도 에세이 한 편을 보내주었다. <When Things Go Missing>이라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려야 하는 장문의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가끔은 웃으며 위로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잃어버린 것들은 찾아지기 마련이라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잃어버린다는 문장에서 나는 안심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실은 우리에게 유한한 삶을 더 잘 살게 종용한다는 대목에서 나는 그 동안 잃어버림 앞에서 바등바등 조바심 냈던 내 얼굴을 떠올렸다.


두번째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없어졌을지 모르는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로랑의 장지갑과 디스퀘어드의 청바지, 갸쿠소의 츄리닝 팬츠와 꼼데갸르송의 숄더백. 어느 것은 제자리에 있었고 어느 것은 정말 사라지고 없었다. 없어짐은 갑작스런 부재다. 우리는 물건이 정확히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영문 모를 부재다. 그래서 상실이 찾아온다. 돌연 생겨난 빈 자리에 끊어진 관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슬프고 그래서 그립다. 나는 없어진 꼼데갸르송의 숄더 백을 생각하며 비 오는 시부야의 맥도날드를 떠올렸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디스퀘어드의 청바지를 기억 속에서 찾으며 옆자리 후배의 디스퀘어드 청바지를 생각했다. 물건이 없어지니 상실이 생겨났다. 나는 그 안에서 부재를 그리워한다. 


병원에 있으면서 퇴원 후 꼭 하고 싶은 일로 '내가 살던 동네 가보기'를 꼽아놓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내가 119 구급차에 실려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 가기 전 여름날 낮의 풍경을 계속 내 머리 속에서 되살려내고 있었다. 모르는 사이에 신규 오픈한 밥집, 내가 주문해 반도 못 먹었던 차돌배기 덮밥, 오른 편 대각선 쪽에 앉아있던 유아인을 닮은 남자, 디저트로 딸려 나온 오렌지 한 쪽. 이날의 기억이 잊혀질라 하면 찾아오곤 했다. 어쩌면 나는 상실의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었던 건지 모른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곳, 다시는 내 것이 아닌 것들, 그러니까 지나간 시간과 공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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