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 어쩌면 기나긴 일기에 마침표를 찍고...
'나는 가끔 나의 뒷모습을 본다', 에세이 원고를 넘기고 제목을 생각해보라는 편집장 선배 말에 침대에 누워 난 이런 글귀를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본래 기획의 발랄한 템포를 생각하면 영화 '나혼자 집에'를 빌려 '나혼자 집에: 세상은 가끔 1인칭이곤 한다'가 나을까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그만큼 멋이 없어서겠지만) 몇 개의 제목들이 둥둥 떠다녔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되었을까. 다음날 선배 연락에 난 마지막 남은 저 우울한 문장을 이야기할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러지 않았다. 속으론 '언젠가 소설을 쓴다면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내가 아닌 타인의 말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2016년 늦여름, 회사를 나와 집에서 살기를 5년 여. 나의 첫 번째 에세이는 '때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이 되었다.
처음으로 인터뷰를 받고 돌아온 밤, 출판사에서 보내준 질문지 파일을 열었다. 책 출간에 맞춰 진행되는 다소 뻔한, 짐작 가능한 물음일 거라 생각했지만, 별로, 전혀 그러지 않았고, 몇 개의 질문 앞에 이제야 보이는 나의 시간들이 있었다. 지난 비 오던 추운 밤, 북토크가 끝난 뒤 돌아오는 길에도 떠오르는 말들이 있었고, 어제의 잡지 인터뷰도 혼자가 된 뒤 생각난 문장을 얘기하고 있었다. 세상은 분명 '후회'로 알게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후회'란 본래 그런 의미의 말이 아닐까, 그런 상황을 증명하기 위해, 드러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닐까, 난 이제 조금 확신을 갖고 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의 모든 페이지를 마치고 몇 달 즈음, 난 지금에서야 떠오르는 나의 어제가 조금은 새롭다.
이 책은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조금 3자의 관점에서 적은 글이다. 당시엔 모르고 지나갔던 것들을 시간이 흘러 뒤늦게 생각하며 쓴 글이다. 창밖에서 '집콕'을 바라보듯, 내가 아닌 내가 한 때 나였던 나를 돌아보며 생각하고 써내려간 글이다. 어제 인터뷰 자리에서 난 '항상 글만큼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새삼 느꼈다'고 이야기했는데, 글만큼 살기위해 그렇게 썼는지도 모른다. 나란 사람을 취재원처럼, 내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려 내가 아닌 나의 자리에서 몇 달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10년 기자 생활의 직업병인가 싶기도 하지만, 5년 여의 세월이 알려준 건 아마 나란 사람을 바라보는 '거리'였다. 내가 되기위해, 다시 나로 살기 위해 내가 아닌 내가 되어보는 '거리.', 그리고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거리. 이상하게도 그렇게 나를 바라볼 때, 난 조금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 '때로는 혼자라는 시간'의 기록
그제 첫 온라인 강의에서 하지 못한 말. 좀 더 잘 하고 싶었던 이야기. 오늘 유튜브 인터뷰어가 아닌, '이'가 되어 몰랐던 이야기, 조금 맘에 들지 않았던 말. 번역서 하나와 에세이 한 권, 그리고 조금은 계발서에 가까운 에세이 하나. 한 해에 이런 수확이라면 부지런하고 빈틈없는 365일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가 않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오래 전 어느 즈음인가에 시작돼 이제서야 매듭을 짖는 이야기들이다. 번역을 하게될 줄도, 할 수 있을 줄도, 책을 낼 줄도, 그게 두 권이 될 줄도 몰랐지만, 세상 모든 '우연'은 분명 모르고 지나쳤던 오랜 과거 위에 자라난다.
일본의 북 디렉터 1세대라 불리는 우치누마 신타로는 이 시절 새삼 '일기'를 이야기하며, '막연한 불안도 글로 써보면 형태를 갖춘 불안이 되고, 소중한 순간도 저장을 해놓지 않으면 흘러가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왜인지 기나긴 일기를 끝마친 듯한 기분이 든다. 아마도 가장 사적인 에세이 '떄로는 혼자라는 즐거움'은 근래 나의 이야기이지만, 혼자가 된 후 5년 간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내가 나를 관찰하기 시작한 뒤 벌어졌던 날들의 후일담이다. 오늘의 인터뷰어가 되어준 분은 '이렇게나 다 말하나 싶었다'고도 이야기했는데, 어쩌면 그런 어제와의 '거리'가 날 도왔는지 모른다.
집에 혼자 살며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비망록. 혹은 비극처럼 보이던 일상의 원근법적 반전 스토리. '도망친 여자'에서 만희는 너무 말 많으면 무엇이 진짜인지 모른다고도 했는데, 늘 진짜를 놓치고 살았던 날들의 '사실 저는요...' 새 신을 신고 나이를 잊은 다홍빛 비니를 쓰고 겨울 밤길의 가로등을 쫓으며, 밤은 깊어만가지만, 사실 세상 모든 오늘의 엔딩을 우리는 아직모른다. 어제오늘 수면양 10시간 남짓. 일단은 잠시, 오야스미나사이.
*헤더의 이미지는 하마다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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