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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커피와 담배가 만남과 대화의 공명을 이루어낸다

by MONORESQUE

STRANGE TO MEET YOU, 만나서 어색합니다. 통렬한 시작이다. 사실 만나서 반가운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처음 보는 사람일 때,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는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반가운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만남엔 어색하고 서먹한 순간이 더 많을지 모른다. 말과 말 사이, 오가는 대화 속에 알게 모르게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 하지만 우리에겐 커피와 담배가 있다. 어색한 기류를 녹이고 서먹한 사이를 달래준 커피와 담배가 있다.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커피와 담배>는 이러한 커피와 담배의 효과를 그려낸 작품이다. 하나마나한 이야기, 이상한 선문답이 커피와 담배의 공기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커피와 담배, 그리고 사람. 만나서 어색했던(STRANGE TO MEET YOU) 순간이 만나서 반가웠던(NICE TO MEET YOU) 순간이 된다.


<커피와 담배>는 총 열 한편의 단편을 모은 영화다. 이는 곧 열 한번의 커피와 담배, 그리고 만남의 이야기가 있다는 얘기다. 영화에서 오가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쓰잘데기 없어 보인다. 로베르토는 아마도 처음 보는 사이인 스티븐에게 생뚱맞게 "우리 엄마를 알지 않느냐"고 묻고, 치과에 가기 싫다는 스티븐에게 대신 가주겠다고 한다. 이것이 첫번째 이야기(Strange to meet you)다. 나머지 이야기들도 대동소이하다. 카페에 누가 먼저 오자고 했는지를 두고 언쟁하는 쌍둥이들(Twins), 고민 없냐고, 털어 놓을 게 정말로 없냐고 자꾸 되묻는 한 남자(No Problem), 더 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커피를 리필해버리는 웨이터와 이를 막으려고 커피 잔을 손으로 막는 여자(Renee), 그리고 끊었으니까 다시 필 수 있는 게 금연의 좋은 점이라 말하는 톰 웨이츠와 이기 팝(Somewhere California). 황당무계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이 열 한개의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거짓말처럼 모든 게 어색하지 않게 흘러들어온다. 어색하고 서먹했던 순간이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타고,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면서 자연스레 리듬을 찾는다. 특히나 별 문제 없다는 알렉스와 뭐 털어놓을 거 없냐고 재차 묻는 이작의 대화는 영화가 끌고가는 커피와 담배의 기운을 조금 더 선명하게 얘기해준다. 이작과의 만남 이후 2와 2, 3과 3, 6과 6. 동일한 숫자가 반복해 나오는 주사위. 이리저리 부딪혔던 언쟁이 하나의 숫자로 수렴된다. 더불어 잭과 멕의 대화에서 나온 테슬러 이론은 커피와 담배에도 적용 가능하다. 지구는 음향 공명의 전도체라는 이론. 형광등, 라디오, 텔레비전을 발명했다는 니콜라 테슬러. 잭은 그의 이 발명품들이 없었더란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는 지금같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커피와 담배를 두고 하는 얘기같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챕터는 샴페인(Champagne)이다. 이 챕터가 의미심장하다. 낡은 카페에 앉은 두 노인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어딘가 크게 낙담을 한 것만 같다. 테일러는 "현실에서 멀어진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빌은 "괜찮냐"고 묻는다. 빌은 담배를 한 개피 꺼내에 입에 물고, 테일러는 말러의 음악 얘기를 꺼낸다. "세상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노랫말." 둘을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는 그 음악이 들려온다고 말한다. 정말로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이 들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노랫말이 카페를 울린다. 마술같은 순간이다. 커피는 단순히 카페인을 섭취하는 게 아닐 거다. 담배는 단순히 니코틴을 흡입하는 게 아닐 거다. 커피와 담배는 만남의 공명을 이루어낸다. 일종의 전도체다. 어색해서, 서먹해서 방황하는 대화를 커피와 담배가 어르고 달래 제자리에 앉힌다. 테일러는 빌에게 묻는다. 휴식 시간이 얼마냐고. 빌은 2분이라 말하고 테일러는 낮잠을 자야겠다고 한다. 그가 낮잠을 자는 사이 다시 말러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테일러의 환청이었을 그 음악이 건물 전체에 울려퍼진다. 커피와 담배가 만들어 냈을 이 웅장한 멜로디는 우리의 가슴 속에도 울려퍼진다. 커피와 담배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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