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Solitude)

시인 - 엘라 휠러 윌콕스

by 제제

영원할 것 같은 현재의 모습들은 영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주 조금씩 비추어주지만 우리는 그것을 쉽게 외면하는 것 같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끝날 것 같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해주시는 의료진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오랜만에 시집을 보다가 문득 다른 맛이 낫다고 해야 하나 내가 예전에 읽었을 때 시와 오늘 저녁에 읽은 시의 맛이 달랐다. 그래서 시는 두고두고 읽게 되는 것 같다.



시를 소개하는 글을 쓰다 보면 따분하고 어려운 문학 '시'라는 인식, 어렵다는 인식보다는 내가 힘들 때, 내가 복잡할 때 내게 잠깐의 여유를 전달해주는 그런 문학 '시'로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항상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소개할 시는 < 엘라 휠러 윌콕스 - 고독 >이다.


엘라 휠러 윌콕스.png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는 1850년 미국 위스콘신 주 출신으로 4남매 중 막내였다. 윌콕스의 가족들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매디슨 북쪽으로 이사하였고 그의 가족들은 지식에 대한 중요함을 강조아였으며 그런 탓에 어려서부터 윌콕스 가족들은 책과 신문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윌콕스는 8세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13살 때는 첫 시집을 출판하였다.


어린 나이부터 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인 윌콕스는 < 고독 Solitude >을 1883년에 처음 발표하였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시의 앞부분이 인용되기도 하였다.



이 시에는 윌콕스가 쓰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다. 가난한 윌콕스는 주지사 취임식에 초대를 받아 설레는 마음으로 취임식장에 가던 중, 기차에서 검은색 옷을 입은 미망인과 함께 앉게 되었고 의도하지 않게 목적지에 가는 내내 윌콕스는 그녀를 위로해야 했고 함께 느낀 슬픔 감정도 함께 하였다. 취임식장에 도착한 윌콕스는 누구와도 웃으며 어울릴 수 없었다. 그 순간 옆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과 함께 기차에서 만난 슬퍼하는 미망인이 생각나면서 빠르게 '고독'의 도입부를 썼다.



"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 울어라, 너 혼자만 울 것이다."



그리고 이틀 만에 '고독'이라는 시가 완성되었다. 윌콕스의 시는 엄청난 문학적 정교함을 지닌 시는 아니지만 미국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들 중 무려 14편이나 선택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이제 그녀의 시를 보자.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슬프고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

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래하라, 그러면 산들이 화답하리라.

한숨지으라, 그러면 허공에 사라지리라.

메아리는 즐거운 소리는 되울리지만

근심의 목소리에는 움츠러든다.


환희에 넘쳐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비통해하라, 그들이 너를 떠나리라.

사람들은 너의 기쁨은 남김없이 원하지만

너의 비애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뻐하라, 그러면 친구들로 넘쳐 나리라.

슬퍼하라, 그러면 친구들을 모두 잃으리라.


너의 달콤한 포도주는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의 쓰디쓴 잔은 너 혼자 마셔야 한다.

잔치를 열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 나리라,

굶으라, 그러면 세상은 너를 지나치리라.

성공하고 베풀면 너의 삶에 도움이 되지만

너의 죽음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환희의 전당은 넓어서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줄 서서 지나가야 한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언제 짊어질 고독의 무게를 알고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고 힘들면 가족, 친구가 곁을 지켜주지만 영원하지 않다. 유한함을 인지함으로써 현재의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ksenia-makagonova-gYloCv6msfM-unsplash.jpg 누구나 지나치는 유년시절, 우리는 그때 제일 솔직했다.


갑자기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감기에 걸려 일찍 주무셨다. 걱정이 된 나는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집안일을 도와드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런 사실이 답답했는지 살면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기로 계산해보니 값이 나왔다. 값이 나왔다는 그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는지 혼자 울었었다.


소심한 탓이였을까 하지만 지금의 내가 생각했을 때는 영원할 정도로 소중한 가족이여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직면한 순간이었다.


pawel-nolbert-wE_Dk2Kd3GQ-unsplash.jpg 고독( Solitude )



고독,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진다. 나는 고독을 좋은 단어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도 존재한다는 복선의 역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현재의 내가 존재하면서 함께하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도 유한하기에 누군가를 너무나 미워할 시간조차 때론 아깝다.


dimitri-houtteman-2P6Q7_uiDr0-unsplash.jpg '오글거리다'는 말은 이유가 될 수 없다. 핑계일뿐


모두를 좋아하라는 의미라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람, 내 친구, 내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글거린다.' 같은 핑계를 저리 치워버리고 자신이 말로 표현 헀을 때 서로 좋은 감정들은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론 내 사람이기에 남들이 못해주는 아픈 말도 해주는 것이 내 삶의 질이 조금 좋아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george-coletrain-OjJbTWsCTRg-unsplash.jpg '나'의 시간은 '모두'의 시간과 같이 24시간이다.


우리는 내일을 기대하면서 오늘을 살고 오늘을 살면서도 어제를 기억한다. 또 오후에 오전의 한 행동을 생각하기도 하고 자기 전에 내가 낮에 했던 말들에 대해서 신경 쓸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도 지금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면서도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andrew-teoh-B_OWFtrPZL8-unsplash.jpg 현 시대에 살아가는 모든이들은 강하다.


모든 언행에 대한 결과는 만족할 수도 시킬 수도 없다. 그 과정 속에서 모두가 상처를 받으며 배우고 생활하고 성장했기에 우리는 고독을 마주할 수 있는 각오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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