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시인 - 김소월

by 제제

시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다 보면 가끔 나조차도 내가 진짜 시를 좋아하는 것인지 나를 공감해주는 글을 좋아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짧은 글 안에 많은 해석이 가능했고 짧은 시간에 나를 환기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 읽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걸까? 내가 진짜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매개체일 뿐 다른 것을 좋아하는 걸까?



ducminh-nguyen-3yyZsyUa48s-unsplash.jpg 시는 내게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준다.


자칫 겉만 보면 '뭐 이렇게 어렵게 생각할까'라는 생각도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확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런 시간이 아깝지 않다.

정하기 어렵다고 애초에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들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데 나 자신에서 찾을 수 있는 것만큼은 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시는 시인 '김소월 - 진달래꽃'에 수록된 시 중 한 개다.

오늘 내가 소개해주고 싶은 시는 <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 보냐 >라는 시이다.

김소월1.jpg 김소월(1902 ~ 1934)



'시인' 김소월은 190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고 조부의 영향으로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김소월의 아버지가 지병이 있었다가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후에 김소월이 집안을 이끌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20년의 우리의 삶과 다른 것이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였다. 1926년에 동아일보 지국장을 1년 정도 역임하였지만 금방 망한 탓에 다른 여러 사업도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그로 인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1934년 자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당시 아픔을 잊기 위함인지 당시 앓고 있던 류머티즘을 버티기 위해서 복용한 아편의 중독 때문인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김소월 시인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진정한 삶은 시를 쓰는 순간이라도 불린다.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서의 삶을 택했던 그에게 시를 쓰는 것이 진정한 김소월의 삶을 살 수 있었기에 그에게는 목숨을 바쳐서, '최선'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글 쓸 때만큼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런 문학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1915년 오산 중학에 입학 당시 스승 '김억'이 있었다.

1925년에 김소월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진달래꽃' 시집을 발표하였고 그 이전에도 여러 시들을 잡지에 수록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김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시를 보자




하소연하며 한숨을 지으며

세상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여!

말을 나쁘지 않도록 좋게 꾸밈은

달라진 이 세상의 버릇이라고, 오오 그대들!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두세 번(蕃) 생각하라, 위선(僞善) 그것이

저부터 밑지고 들어가는 장사일진댄.

사는 법(法)이 근심은 못 같은다고,

남의 설음을 남은 몰라라.

말마라, 세상, 세상 사람은

세상에 좋은 이름 좋은 말로써

한 사람을 속옷마저 벗긴 뒤에는

그를 네길거리에 세워 놓아라, 장승도 마찬가지.

이 무슨 일이냐, 그날로부터,

세상 사람들은 제각금 제 비위(脾胃)의 헐한 값으로

그의 몸값을 매마쟈고 덤벼들어라.

오오 그러면, 그대들은 이후에라도

하늘을 우러르라, 그저 혼자, 섧거나 괴롭거나.


[섧다 = 원통하고 슬프다. / = 동사가 나타내는 동작을 할 수 없다거나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말 ]






yohan-cho-k2jnsN3Sd5Y-unsplash.jpg 김소월의 시는 아름답지만 어렵다.



김소월 시인과 관련해서 많은 조사를 해보니 시가 어렵지만 잘 읽힌다고 한다. 그의 인생과 작품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그가 울부짖는 것 같기도 하면서 화내고 있는 것 같다. 읽어본 김소월의 시 중에 이 시만큼은 오랫동안 책임 뒤에 숨겨놓은 자신을 마주하며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시 같았다.


삶에 있어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사회생활하기 위 해등 등 각자의 삶에서 역행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저만치 미뤄둔다.

너무 잦은 마음 표현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 때가 많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스스로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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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누군가가 있다. 어디에나 존재 한다.


그(그녀)가 과연 소통 안된다는 이유로 흔히 말하는 '꼰대'일까? 그가 살았던 당시에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토익이 중요했을까, 어학연수가 중요했을까? 무엇이 중요했을까? 어쩌면 김소월도 좋은 상사가 못 될 수 있다.


우리도 그렇다. 단순히 자신과의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그의 삶 전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그땐 정말 책임, 가장이라는 단어 때문에 맘에 있는 말을 그 누구에게도 못 해서 마음에 있는 말을 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거나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mathew-schwartz-01hH6y7oZFk-unsplash.jpg 꺼지지 않은 도시, 서울


자신의 마음의 모든 것을 남에게 들어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사회는 전쟁터처럼 총 없이 펜으로 말로 하는 전쟁터이고 내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내가 남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칭찬을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전쟁터에서 굳이 나에 대한 선입견을 남이 갖게 만들 필요는 없다.


다만, 그런 세상에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들춰보면서 온전한 나와 마주할 수 있는 활동이나 시간을 가지면 갑자기 찾아오는 고독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그런 시간은 글을 쓰거나 영화를 본다. 인상 깊은 구절, 나를 공감해주는 글을 보면서 미뤄놨던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게 들여다본다. 특히 글을 쓸 때 정적인 활동이여서 적어놓은 글씨 체, 간격, 펜이 주는 촉감등 하나하나가 집중되어 보이고 쓰다보면 어느새 마음속에 있던 답답함은 글로 되어있다.


jana-sabeth-8ZxauE988no-unsplash.jpg 다 힘드니까 내가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라 힘든 것이다.


무한경쟁시대에 사는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으니 가끔은 온전한 '나'를 위해, '나'도 지키기 바란다.


P.S. 글을 읽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시에 감사함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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