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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인배 Nov 25. 2024

너도 그래? 나도 그래.

불안의 시대 속 병원 동지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서,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지 불안에 떨면서, 실수 혹은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강박적으로 일을 붙들고 있는 직장인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남편과 나는 양가 부모님과 주변 지인들에게는 진료 사실을 자연스레 숨겼다.

서로 그러기로 입을 맞춘거도 아니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진료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정신의학과로 진료를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우리는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약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니가 어쨌든 그런 점이 있으니까 병원도 다니는 거 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도 물론 잘못 했지만, 너도 너를 잘 다스려야지

네가 원래도 부정적인 생각을 좀 자꾸 하잖아,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아니 이런 거로 그렇게 걱정하면 어떻게 해, 약을 좀 더 늘려야 겠다.

여전히 나도 주변에 병원 진료에 대해서 밝히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에게 그 소식이 들어가서, 이슈의 원인으로 나의 병을 이용하도록 만들지 않는 것이 좋으니까.


하지만 쭉 숨기고 있기 때문에 더 외로웠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이렇게 괴로울까, 나는 왜 불안해, 왜 우울해...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동지들을 얻었다.

평소와 같은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였다. 그 즈음에는 모임에 인원이 많아지면 지치고 우울해지는 것이 심해져서 친구들은 2-3명씩만 만났던 시기였다.

나를 포함해 3명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여느때와 같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언니, 나 우울증 약 먹어. 되게 오래 되었어. 한 2-3년?
근데 먹으니까 좀 나은 거 같아.
언니도 일하는 거 보다보면 병원이든 상담이든 필요할 것 같아.
가보는 건 어때?

나를 위한 고백.

나의 마음 건강이 걱정되어 본인의 진료와 투약 사실을 알리면서 진료를 권해주는 그 마음이 고맙고, 또 진료를 오래 다니다보면 해당 질병의 전문가가 된다더니 너무 정확히 나의 상태를 짚어낸 그 상황이 놀라워서 웃음이 났다.

진지하게 꺼낸 본인의 제안에 내가 미친듯이 웃어대자 친구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 언니 농담 아니고 진짜라고~"

너 정확했다, 진짜.
나 이미 다니고 있어. 한 6개월 됐어. 

다행이네, 잘했네.

친구의 그 한마디가 나를 외로움에서 꺼내주었다.

나 혼자가 아니야. 누군가는 분명 나처럼 이 마음의 병과 싸우고 있어.

그렇게 만나게 된 병원 선배(?)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거, 무서웠던 거, 고민되었던 거 등등을 모두 털어놓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떤 질병이든 동지가 있어야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법이었다.

심지어 이미 질병의 치료가 심리적 안정을 향하고 있음에도.


그 뒤로도 나는 여러 병원 동지들을 만나게 되었다.

(섣부른 고백은 하지말아야겠지만,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아픔을 풀어놓게 되더라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회사 동기들, 대학 친구들, 회사 동료들...

생각보다 나의 주변에 많은 병원 동지들이 있었다. 각자 이유는 다르지만 불안과 우울을 안고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치유를 진심으로 바라며 응원하고 있다.


한 대학 친구는 회사 근처 병원을 처음 방문한 날에 놀랐다고 했다.

"일하다가 좀 늦어져서 예약한 시간이 간당간당한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정신없이 걸어서 들어갔는데, 대기실에...사람이~진짜 많더라. 아는 사람 만날까봐, 무서웠어. 직장인들 다 너무 힘든거 같아."

역삼역 근처에 있는 그 병원은 근처 회사에 다니는 환자가 정말 많다고 했다.

특정 회사 직원은 정말 많은지, 친구의 초진에서는 담당 의사가 그 회사 직원인지를 확인하는 질문도 했다고 한다.

사무실이 많은 동네에 가면 정신의학과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절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 불안이 절대 직장인에게 한정된 것은 아닐테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계속 경쟁하고, 증명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산업이 발달하고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그에 따른 개개인의 기대 수준도 높아지면서 우리는 위와 앞을 향해 달렸다.

그러다 문득 멈춰섰을 때에 몰려오는 불안은...상상 이상의 공포이다.

그 시대에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지지해줄 수 있는 동지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인사이드아웃2>가 개봉하고 '불안이(Anxiety)'에 대한 평가를 보면, 그 사람의 불안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나와 내 주변 여럿을 울린 불안이

나의 경우는 불안이의 패닉(스포하면 안되는데!)을 보다가 공황이 올 뻔했다.

왜 저러는 지 너무 잘 알아서, 그리고 내 안의 마음의 소리여서.

다행히 그 장면은 '공황이 올거 같다, 어어어...'하는 시점에 끝났다. (조금만 더 장면이 길었다면 극장에서 뛰쳐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의 반응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었다. (여러분들 주변엔 다른 반응도 더 있었을지 궁금하다.)

불안이 짜증나더라, 완전 빌런!

불안이 마음도 알겠어서 불쌍해서 슬펐어, 눈물나더라.

불안이가 너무 나 같아서 보는게 괴롭더라.

위의 반응을 기준으로 불안의 동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처럼 그냥 그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불안이 가슴에 소용돌이 치는 그 심정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 열심히 사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만이 이 고통과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

불안의 시대를 나는 병원 동지들과 함께, 불안을 나누고 우울함을 나누며 한걸음씩 나아가보고 있다.

너도 그래? 나도 그래!
우리 같이 잘 다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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