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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23. 2024

ep.04 : 처음부터 조회수 1만

"안녕하세요. 요리하는 재민입니다. 오늘은 제가 점심으로 먹을 요리를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제가 진짜 맛잘알 이거든요? 그래서 정말 정말 맛있는 요리를 들고와스습ㅂ니...... 아아아아악!  하.... 또 실수했네......"


재민은 자신의 원룸 방 한편 주방에서 쿠팡에서 로켓배송으로 산 삼각대에 핸드폰을 거치해 두고 어설프게 요리하는 자신을 찍고 있다. 본인피셜 맛잘알이라는 재민의 오늘 요리는 애호박 비빔밥이다. 사실 재민은 애호박을 좋아하지 않고, 비빔밥도 자주 해 먹지 않지만 콘텐츠를 위해 선택한 요리였다. 휘청거리는 얇은 삼각대 위 핸드폰만큼 불안한 재민의 계획은 이러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요리 인플루언서가 될 것이다. 퇴사하기 전부터 해오던 요리 인스타그램 계정을 키워 수익을 내볼 심산이었다. 2022년은 숏폼의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다. 재민은 이 시기가 마치 자신의 퇴사와 맞물려 찾아온 행운 같았다. 숏폼이라 하면 60초 이내에 짧은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입장에서 가성비 좋은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이다.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지금까지 유튜버가 대세였다. 일단 재민이 알아본 결과, 유튜브에서 수익을 내려면 누적 시청시간 1000시간과 최소 구독자 100명, 영상 기본 길이 8분을 모두 소화해야 하는데 숏폼으로 하면 가성비 좋게 1분짜리 영상으로 이름을 알리고 유명세로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수익을 낼 수 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는 릴스가 있고, 유튜브에는 숏츠가 있고, 거대한 숏폼 플랫폼 틱톡도 있다. 세 개의 대형 플랫폼에 똑같은 영상을 돌려쓰면 금방 자신이 요리에 한몫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생각했다.


재민은 무작정 콘텐츠를 만들기보다는 먼저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서도 찾아보았다. 유튜브에 올라온 퍼스널 브랜딩 영상, 퍼스널 브랜딩 관련 책, 온라인 클래스까지 들어 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 타깃, 콘텐츠 방향을 설정했다. 그렇게 재민이 결정한 주 타깃은 요리를 해 먹어보고 싶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자취생이다. 그래서 자취생 요리로 애호박 비빔밥을 첫 요리로 선택했다. 조금은 색다르고 하지만 만들기 쉬운, 그럴싸한 요리로 말이다.


재민은 콘텐츠를 만들어본 경험이 적으니 일단 자신이 제일 잘 이해할 수 있는, 자신과 비슷한 연령과 환경의 사람을 타깃으로 잡고 '집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이야기한다. 기존의 레시피를 알려주는 콘텐츠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 요리는 영상으로 보여주고 목소리는 따로 녹음해 시청자와 직접 대화하듯 요리에 대한 소소한 일상과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 이제부터 담으려고 한다. 물론 생각처럼 잘 되고 있지 않지만.... 왜냐하면 재민은 카메라 앞에 어색해 자꾸 말을 버벅거리며 실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



"60초짜리 영상 하나 만드는데 6시간이나 걸렸네. 시장본거랑, 영상 촬영이랑, 대본, 녹음, 편집까지 하면 진짜 오래 걸리네. 점심에 맞춰 시작했는데 벌써 저녁이라니. 하루가 다 간다. 하루가 다 가!"


재민은 5번의 시도 끝에 녹음을 마치고 영상 편집을 완성했다. 아직 수익을 얻고 있지 않으니 영상도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녹음도 핸드폰에 있는 녹음기능을 사용한다. 편집은 간편 앱을 아이패드에 다운받아 활용했다. 그래도 유료 결제를 해서 다양한 기능을 쓸 수 있어 나름 만족했다. 아직은 모든 과정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지만 이런 과정을 배우는 게 재밌고 몇 번 더 하다 보면 시스템을 구축해 빠르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꼰꼰 건축에서는 하루종일 캐드 프로그램으로 도면만 그렸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훨씬 재밌는 일이라고 확신도 들었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자리를 잡으면 정말 재밌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부러워하던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재민은 조심스레 자신 앞에 놓인 꽃 길을 상상을 해본다.


재민은 자신이 처음으로 만든 1분짜리 영상을 다시 돌려본다. 영상에서 어색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화면에서 어수룩하게 애호박을 썰고 볶고, 고추장에 참기름을 섞는 모습은 본다. 콘텐츠의 퀄리티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든 첫 영상에 뿌듯함을 느낀다. 재민은 영상에 문제가 없는지 1분짜리 영상을 다시 보고 다시 본다. 10번 정도 돌려보고 드디어 마음을 먹는다.


"에라 모르겠다. 올려, 올려!"



*



하루종일 1분짜리 영상을 만드느라 지친 재민은 밤새 꿈을 꾼다. 꿈속에서 5분마다 자신이 올린 콘텐츠를 새로 고침하고 있다. 영상을 새로 고침 할 때마다 애호박을 썰고 고추장에 참기름을 붓는다. 이상하게 참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영상에 자신이 참기름이 아닌 식용유를 참기름인척 하고 넣고 있었다. 큰일이다. 가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건 가짜야...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냄새가 안 나는 걸 알 텐데.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 니글거리는 애호박 비빔밥을 한 숟가락 크게 먹으며 바보 같이 웃는다.


"여러분~ 이거 맛보시면 다시는 다른 비빔밥 못 드실 거예요~ 제가 맛잘알인데 이건 진짜 대박이에요~ 와~ 한 번만, 딱 한 번만 따라 해 보세요~ 보기만 해도 군침 싹~~~~ 돌죠?"


너무나 능숙하게 멘트를 치는 자신의 모습이 신기하면서 뿌듯하다. 맛있다며 애호박 비빔밥을 한 숟갈 더 떠먹으며 엄지를 치켜올린다. 윙크까지 한다. 잘한다, 정말. 자신이 만든 요리를 이렇게 맛있게 먹다니. 재민은 오물오물 거리며 한 입 가득 애호박 비빔밥을 먹는다. 근데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분명 식용유를 썼는데 참기름 냄새가 난다.


" ! ! ? "


재민은 번뜩 눈을 떴다. 꿈속에서 빠져나와 베개에 침을 흘리며 누워있는 자신을 인지했다. 곧장 머리맡에 둔 핸드폰을 눌러 시간을 확인한다. 오전 8시 23분. 재민은 비몽사몽으로 인스타그램을 켠다. 어제 올린 첫 릴스가 반응이 있나 없나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첫 영상이니 대단하게 큰 성과를 바라는 건 아니고, 혹시나... 혹시나 알고리즘을 탔을까 기대했기 때문에 확인해 보고 싶었다.


"흐어어어어어어어어!!!"


재민은 놀란 듯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재민은 믿을 수 없었다.


생애 첫 릴스의 조회수가 잠든 사이에 1만이 터졌다.


세상 사는 게 이렇게 쉬울 일인가? 이제 광고받고 협찬받고 하면 월 200만 원은 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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