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50만 원. 관리비 10만 원. 생활비는 한 80만 원? 월 150 정도면 살 수 있겠는데?”
재민은 혼자 중얼거리며 노트에 끄적인다. 재민은 퇴사 다음날 햇빛이 잘 드는 자신의 집에서 계획을 짜고 있다. 계획에 제목이 있다면 ‘홀로서기 마스터플랜’. 재민의 계산으로 매달 200만 원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회사를 다니지 않고 안정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수익을 퇴사 다음날부터 낼 수 없으니 당장은 돈을 쓰는 입장이겠지만, 자신이 노력하면 수입 파이프라인은 금방 생길 것이다.
“그래도 이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겠지? 진짜 노력 많이 해야겠다. 그래도 평생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하던 데로만 하면 돼.”
재민의 목표는 회사를 다니지 않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돈을 벌고 싶은 목표도 있다. 하지만 20대 내내 건축을 공부했던 재민은 당장 확실히 방향을 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건축 외 직업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어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시험해 보고 싶다. 근데 회사도 안 다니고 백수로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 답을 재민은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채움공제에서 찾았다. 퇴사 전 내일채움공제가 만기 되었으니 1500만 원이 곧 재민의 통장으로 입금될 예정이다. 퇴직금이랑 내채공을 합치면 수입 없이 1년은 버틸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된다. 재민은 자신이 업에 대한 실험과 월 200만원의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동안 느낄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안전한 샌드박스 같은 환경을 계획하고 만들었다.
“2023년 4월까지는 버틸 수 있겠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세 가지를 실험할 수 있겠다.”
1년 동안 세 가지의 직업을 실험할 예정이고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수입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는지 그 계획을 지금 노트에 적고 있다. 세 가지 직업 중 어떤 게 돈을 제일 많이 벌지, 혹은 어떤 일을 제일 좋아할지 알 수 없었지만 월 200만 원은 꼭 벌고 싶다. 말이 쉬워 200만 원이지 새로운 일을 시작해 금방 그 돈을 벌 수 있을까?
재민은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자신은 노력의 질이 평범한 사람과 다르다고 믿었다. 일단 마음먹으면 곧장 실행하고, 계획적이며 성실하게 꾸준한 자신을 믿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자신에게 따라주었던 운. 사람들이 운칠기삼이라고 하며 운이 없음을 한탄할 때 재민은 항상 70%는 성공했었다 생각했다. 왜냐면 운은 언제나 재민의 편이었고 그래서 인생에 실패가 없었으니까. 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만들었고 자신의 운이 세상마저 자신을 돕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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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크리에이터. 프리랜서 디자이너. 작가.
재민이 해보고 싶은 3가지 직업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재민이 3개월 간 인스타그램 요리 계정을 운영해 본 후 도전하고 싶은 직업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재민은 자신의 요리와 이야기를 짧게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는데 특별한 노력 없이도 팔로워가 300명이 금방 넘어갔다. 이걸 본격적으로 키워볼 생각이다. 팔로워가 1만이 넘어가면 재민은 공동구매, 협찬, 콜라보, 굿즈 등으로 수입 파이프라인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러 계정을 통해 봤고 자신도 그렇게 할 계획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정확히는 프리랜서 편집 디자이너는 재민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 실험해보고 싶다. 재민은 영국에서 건축을 공부하며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게 일상이었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만 배우지 않았다. 편집 디자인 툴과 3D 모델링, 종이와 인쇄,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이 편집 디자인을 잘한다고 느꼈던 일은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마다 친구들, 교수님들이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감각적인지 칭찬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능력을 살려 프리랜서로 편집 디자인 일도 해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뜬금없는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재민은 퇴사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퇴사 과정을 책으로 쓰는 것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야구를 관람하다 문뜩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일화가 있는데, 그게 재민에게도 똑같이 왔던 것이다. 재민은 직감적으로 작가로서의 삶도 살아봐야겠다고 느꼈다. 가능성은 모두 열려있고 재민은 무엇이든 할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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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에게 이제 성공은 월 200을 벌어 회사밖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실패는 모든 돈이 떨어질 때까지 제대로 된 수입과 업을 찾지 못해 다시 꼰꼰 건축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진짜 꼰꼰 건축 돌아가면 쪽팔리겠는데……?”
재민은 꼰꼰 건축으로 돌아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당당하게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신 소장의 말도 다 무시하고 퇴사했는데,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그 상황만은 절대로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지—잉. 핸드폰이 진동하며 화면에 알림이 떴다. 재민은 노트에 자신의 계획을 정리하다 핸드폰을 쳐다봤다. 1500만 원이 재민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는 알림이었다. 내일채움공제로 모은 목돈이 들어왔다. 재민은 묘한 흥분감을 느꼈다. 통장도 넉넉하고 계획도 정해졌으니 이제 그렇게 하고 싶었던 홀로서기를 시도할 수 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