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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n 09. 2024

ep.02 : 퇴사 말릴 결심



‘퍽이나 잘 먹고 잘 살겠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이 자식. 그래도 일을 꽤 잘했는데…… 딴생각을 품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을 줄이야.’


신 소장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재민에게 화가 난다. 감히 꼰꼰 건축을 퇴사하는 재민에게 좋은 감정이 들지 않는다. 신 소장은 꼰꼰 건축이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건축사사무소라고 생각하고 여기만큼 연봉이 높은 곳도 없다. 그래도 재민은 대리를 달고 곧잘 신 소장이 이끄는 팀을 잘 따라왔고 나름 똑 부러지는 일처리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 중 한 명이었다. 조금 감정이 흔들린 신 소장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재민을 설득하기로 마음먹는다.


“재민 대리, 아니 재민아. 너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네? 저는 많이 생각해 본 거라서요.”


“너 아직 경력 얼마 안 됐어. 3년 정도만 더 버티면 이직도 수월하고. 혹시 팀을 바꾸고 싶은 거면 팀을 바꿀 수 있게 내가 본부장님께 말씀드려볼게.”


“팀 바꾸는 것도 예전에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나 좋자고 하는 게 아니고 진짜 네 커리어 꼬이는 게 아까워서 그래. 너 석사도 했잖아? 안 아까워?”


“석사까지 하고 실무를 해서 그런지 아쉬운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것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개인적으로 있어서요.”


“지금 나가면 다른 회사 들어가기도 힘들다고.”


“사실 저는 이직할 마음이 크게 없어서요. 건축 설계가 안 맞아서 고민도 1년 3개월 정도 했고, 그 사이에 이루고 싶은 꿈도 생긴 것 같아서요.”


“꿈? 네 꿈이 뭔데?”


“저는 회사 말고 혼자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퍽이나! 어떻게 회사를 안 다니고 돈을 벌 수가 있어?! 그렇게 말하고 나간 애들은 나중에 우리 시다바리하는 동네 구멍가게 같은 사무소에 다니더라.”


“……그래도 혼자 돈 벌어보는 걸 마음먹어서요. 꼭 해보고 싶어요.”


“하아… 그럼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고 다시 말해줘. 그리고 흥분해서 미안. 네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아무튼 이해해라.”


“네.”


신 소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재민과의 독대를 끝냈다. 사실 신 소장은 직원에게 감정적으로 화내는 사람은 아닌데 재민의 퇴사 소식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나 보다. 이직도 아니고 꿈을 찾아 퇴사하다니. 신 소장은 그런 재민이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한들 자신의 팀원이 떠나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크게 무서운 일이 아닌데 왜 화를 내었던 걸까? 자리로 돌아가는 신 소장은 자신의 모습에 의문을 품으며 회의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간다.



*



재민은 4층 중앙 회의실에 홀로 앉아 생각해 본다. 생각하면서 신 소장이 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소화시켜 본다. 재민은 ‘홀로서기’라는 꿈에 대한 리스크가 있음을 분명히 안다. 아무리 당차고 상한가를 찍는 삶을 살아온 재민이라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금방 머리에서 사라진다. 재민은 자신이 실패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왔고 원하는 건 노력한다면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쟁취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정도 리스크 때문에 꼰꼰 건축에 남아서 회사원으로 사는 것은 재민이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이다. 시도하지 않는 겁쟁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할 미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재민은 계획이 있고 자신이 노력만 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건 팩트다.


‘아무렴. 이런 배짱도 없이 원하는 걸 어떻게 얻을 수 있겠어.’



*



하루가 지났다. 재민은 다시 신소장에게 다가가서 면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신 소장에게 말한다.


“소장님. 저 퇴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은 제가 살아야죠. 아무튼 조언 감사합니다.”


신 소장은 설득할 수 없는 재민을 보며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 소장은 이제 포기한 듯 재민에게 인사팀에게 연락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간다.



*



3월 31일 목요일. 재민이 퇴사하는 날이다. 햇빛이 맑게 내리쬔다. 매일 타는 버스를 타고 꼰꼰 건축이 있는 교대역으로 향한다. 이어폰을 꽂고 앉아 창밖을 구경하며 마지막 출근을 즐긴다. 버스 밖 가로수는 조금씩 채도 높은 연두색의 새싹이 나오고 있다. 드디어 진짜 봄이 오는가 보다. 길거리 벚꽃나무는 하루 이틀만 있으면 벚꽃이 터져 만개할 듯 가득 차 보인다. 바깥 온도는 서늘하고 봄 햇살은 따스하다. 퇴사와 봄날씨의 콤비로 재민은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다.


버스에서 내려 꼰꼰 건축 사옥까지 걸어가는 길에 같은 팀 콩 사원을 만났다. 콩 사원은 재민을 보고 뛰어오면서 말한다.


“재민 선배!! 오늘 마지막 날이죠? 진짜 어쩜 좋아. 나 이제 재민 선배 없으면 회사 어떻게 다녀요?”


“맞아요. 드디어 퇴사하네요. 콩 사원님도 빨리 퇴사해야죠. 우리 맨날 퇴사 노래 불렀잖아.”


“재민 선배 퇴사 하면 저도 따라서 퇴사할게요. 나는 진짜 1년도 안돼서 퇴사하면 신 소 정말 놀라겠죠?”


“콩 사원님도 빨리 탈출하세요. 될 수 있으면 탈건축이나 탈회사로.”


“나도 재민 선배 처럼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콩 사원님도 실행력 좋고 고민도 많이 하니까 꼭 자기에게 맞는 일 찾으셔서 퇴사하실 거예요. 하지만 제가 먼저 갑니다. 하하하.”


콩 사원과 재민은 꼰꼰 건축 사옥 정문으로 들어간다. 재민은 꼰꼰 건축 로고가 박힌 빨간색 사원증을 게이트에 찍는다. 마지막 출근을 했다.


오늘부로 지긋지긋한 꼰꼰 건축, 직장인의 삶에서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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