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Jul 14. 2024

ep.07 : 괘씸한 저를 심판해 주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계정을 삭제해 주세요.'


"뭐어? 계정을 삭제해 달라고? 내가 이거 하려고 퇴사까지 했는데! 어떻게 한 달 동안 개고생해서 만든 1500 팔로워 계정인데, 퍽이나!"


재민은 실제로 DM에 답장은 하지 않았지만 너무 황당한 메시지에 화가 나 집에서 혼잣말로 떠들었다. 지금까지 모인 팔로워는 약 1500명. 재민이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콘텐츠를 만들어 올린 결과로 얻은 값진 숫자였다. 물론 그 콘텐츠 중 1/3이 표절 의혹이 있는 콘텐츠였지만 재민은 하늘에 맹세코 베끼지 않았기 때문에 당당했다. 오히려 억울한 게 더 크다. 우연으로 비슷한 주제를 다루은 크리에이터가 자신과 비슷한 콘텐츠를 만들었을 뿐인데. 물론, 재민 보다 먼저 만들어 올렸다는 것이 재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지만.


"근데 이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 요리 레시피는 특허를 받은 것들도 아니고 해외 사이트나 국내 블로그만 뒤져도 나오는 것들인데. 그리고 일상에서 하는 생각은 당연히 모두가 할 수 있는 고민인데 그게 저작권 보호가 되는 건가?"


처음 DM을 받았을 때 재민은 감정적으로 화가 났지만 조금 차분해지니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만약 진짜로 소송을 당하거나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 경우에는 비용이 얼마가 될지 친구를 통해 알아보기도 했다. 변호사를 써야 하는 경우는 완전 최악인데, 기본 500만 원부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재민이 내일채움공제로 만든 1500백 만 원 중 1/3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체 콘텐츠 중 1/3이 표절 의혹이 있으니 그만큼 값을 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재민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결론이 지어졌다. 재민은 절대로 계정을 삭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쿸빵티비의 존재를 몰랐고 정말 우연으로 콘텐츠가 겹쳤다고 메시지를 전달할 심산이다. 왜냐하면 재민은 이런 일로 자신 앞에 다가온 월 200만 원 벌기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수익 파이프 라인을 만들고 크리에이터로 자리 잡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제일 두려운 건 내일채움공제로 받은 돈을 모두 소송비용에 쓰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재민은 통장은 탈탈 털릴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재민은 꼰꼰 건축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만 해도 재민은 아찔하다 느낀다. 그건 재민에게 최악의. 최악의 실패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을 하니 머릿속에 재민이 돌아올 줄 알았다며 웃는 신 소장이 눈에 선하다. 


'절대로. 절대로 꼰꼰 건축으로 돌아갈 수 없지.... 일단 부딪혀보자.'


재민은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게 담은 메시지를 썼다. 혹시 쿸빵티비 운영자가 오해하거나 기분 나쁠 수 있는 표현이나 내용을 계속 고치고 다듬었다. 물론 스스로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화를 키운다면 자신에게 좋지 않을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차분한 마음으로 조심히 메시지를 작성했다.


'안녕하세요 쿸빵티비 운영자님. 인스타그램에서 요리 릴스 계정을 운영하는 재민입니다.

어제 보내주신 DM을 읽고 답변드립니다. 운영자분께서도 제 계정을 보시고 많이 당황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재민이 해명하는 길고 긴 메시지를 보낸 지 약 1분이 되지 않아 쿸빵티비 운영자에게서 답장이 왔다.


재민은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열었다.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재민은 당황했다. 도대체 뭘 감당할 수 있냐고 묻는 거지? 감당?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나 재민은 고민했다. 리스크는 있지만 법적으로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민은 바로 대답했다.


'네. 감당할 부분이 있다면 감당하겠습니다.'


쿸빵티비 운영자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재민은 쿸빵티비 운영자가 자신의 해명글을 읽고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한 편으로는 대답이 없는 걸로 보아 운영자도 작은 해프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건 그냥 해프닝이고 우연히 겹친 건데 같은 크리에이터끼리 뭘 어쩌겠어. 나는 아직 수익을 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요리한다고 재료비가 많이 들어서 마이너스인데.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나저나 오늘도 하나 찍어야 하니까 빨리 시장 보러 가야지 -!"



*



다음날. 알람이 울리기 전 잠에서 깬 재민은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든다. 


'누군가 스토리에 회원님을 태그 했습니다'


인스타그램 알림에 누군가 재민의 요리 계정을 태그 했다. 재민은 태그 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듯 알림을 눌렀다. 그 알림은 곧 재민이 정신이 번쩍 드는 알람이 되었다. 왜냐하면 태그 한 사람이 쿸빵티비였기 때문이다. 재민은 큰일 났다 싶어 빠르게 스토리를 눌렀다. 곧바로 화면에 뜬 것은 어제 쿸빵티비와 재민이 나누었던 DM이었다. 재민은 상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어제 별 탈없이 일단락되었던 사건이 이렇게 세상에 공유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더 놀라운 건 그다음 스토리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유튜버 쿸빵티비 입니다.

재민이라는 요리인스타그램 운영자가 제 콘텐츠를 고대로 카피해 1500명이 넘는 팔로우는 모았습니다.

DM을 읽어보셔서 알겠지만 재민은 콘텐츠 표절을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표절과 관련하여 저의 팬분들께서 릴스에 코멘트를 달아주셨는데 아무런 대응도 없이 지속적으로 카피를 시도하고 업로드했습니다.

결국 제가 조심스럽게 DM을 하였음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계정 또한 삭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대로 저의 고유한 콘텐츠를 카피해 팔로우를 모으면 광고, 협찬, 공동구매 등으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멜로디가 같은 노래가 표절로 처벌받듯 똑같은 내용과 콘셉트, 말투, 요리 레시피까지 카피한 재민의 콘텐츠를 표절죄로 법적 대응을 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자문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재민은 애초에 이 점을 알고 유튜브에서 팔로우는 모으고 있던 저를 타깃 삼아 콘텐츠를 탈취하고 이익을 얻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저는 한 콘텐츠를 만들려면 하루를 꼬박 촬영하고 편집하는데 써야 합니다. 

내용과 요리 메뉴가 겹치지 않게 매일 고민하고 조사합니다. 

재민은 저의 이런 노력을 우습게 보고 그대로 카피해 사용한 파렴치한 사람입니다.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이런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법도, 플랫폼도 저를 지켜주지 않고 양심 없는 재민의 편을 들어줍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판단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판단으로 재민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심판해 주세요.'


그 뒤 스토리는 쿸빵티비 채널의 영상과 표절의혹이 있는 재민의 릴스가 비교될 수 있게 담긴 영상이 이어졌다. 쿸빵티비는 한 개가 아니라 열 개의 비교영상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투표를 달았다.


'재민을 심판해 주세요.

( 1. 재민이 표절했고 계정을 삭제해야 한다. )

( 2. 이 정도는 표절이 아니다. )'


스토리를 모두 본 재민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심란한 파도에 둥둥 떠있는 것같이 멀미가 오는 듯했다. 그리고 투표 결과를 보기 위해 자신도 투표를 했다. ( 2. 이 정도는 표절이 아니다. )를 클릭하자 결과가 나왔다.




96% vs 4%





"XX. X 됐다."

대세는 쿸빵티비쪽으로 기울었다.

이전 06화 ep.06 : 표절의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