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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Oct 26. 2024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셨습니다.

나는 매일매일 이직을 꿈꿨다. 꿈꾸는 이유는 단순했다. 현재 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환경의 변화를 꾀하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2년 전 중견 건축사사무소에서 프리랜서의 꿈을 안고 퇴사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세계는 혼란에 휩쓸려고 신입 프리랜서는 불안정한 경제의 파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결국 1년을 못 버티고 어쩔 수 없이 중소 건축사사무소에 들어가 버렸다(돈에 멱살이 잡혔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내 짧은 인생을 돌아볼 때 나는 제대로 된 팀을 만나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났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팀에는 나와 입사를 같이한 경력직 대리가 세 명이 있었고(이것부터 굉장히 싸했다. 대리 3명을 한 번에 뽑았다니….)  대리 셋은 팀 내에서 임원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직급의 직원이었다. 임원급인 팀장은 겉으로는 일을 잘하고 인성이 훌륭해 보이지만 사기꾼 기질이 있어 말만 그럴싸했고, 그 밑에 이인자인 임원급 부팀장은 스트레스에 취약하여 고슴도치 바늘처럼 예민할 뿐만 아니라 그 스트레스 취약성 때문에 제대로 일을 수행해내지 못하는 반쪽자리 인력이었다. 그리고 다른 팀 원으로는 말을 더럽게도 안 듣는 고집불통의 나이 많은 신입사원 둘이 있었다.


우리 팀은 대외적으로 주거복합 1팀으로 불렸지만 진짜 이름은 오합지졸 팀이었고 나는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중소기업에 들어온 걸 후회했다. 



별다른 방법 없이 9개월을 버텼다. 좋게 말해서 버틴 거고 냉정하게 말하면 이직을 못했다. 상시채용으로 지원할 수 있는 건설 관련 대기업과 메이저 건축사사무소에는 포트폴리오와 서류를 모두 돌렸다. 그리고 매일 아침 관심 있는 회사 채용 페이지에 들어가 채용공고를 보며 혹시 나와 맞는 자리가 생길지 확인했다.


하지만 세상은 전쟁 중이고 여기저기서 금리 오르는 소리가 들리며 그 여파로 욜로를 살던 mz청년들은 짠테크에 돌입하기 시작하여 코로나 때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오마카세 가게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는 뉴스가 뉴스레터에 실렸다. 남아있는 오마카세집 찾는 것만큼 채용공고도 가뭄에 별따기였고, 아주 가끔 마주한 연차와 직무가 맞아 지원한 기업들은 혹시 몰라 지원한 고연차를 뽑기 바빴다(취업 카페에 들어가면 이런 이야기가 비일비재했다).





어느 여름날, 할 일은 없었지만 마냥 놀면 눈치를 주기에 이미 완성된 PPT 파일을 켜 놓은 채 몰래몰래 옆자리 대리와 카톡을 하고 있는데 잡코리아를 통해 헤드헌터에게 연락이 왔다. 나와 맞는 직무가 있다고 지원해 보지 않겠냐 하는데 아무래도 많은 사람에게 무작위로 보내는 전체 메시지 같았다. 나는 특별한 기대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야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지원하게 된 곳은 ㅇㅇ 프리미엄 아웃렛. 건축사사무소에 다니던 내가 프리미엄 아웃렛에서 뭘 할 수 있겠냐 싶었지만, 원어민급 영어와 건축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설계 관리 담당 직무였기에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았다. 좋다. 일단 해보는 거다. 나는 퇴근 후 빠르게 이력서를 작성해서 헤드헌터에게 넘겼다.


2주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헤드헌터 담당자였다. 1차 서류 면접에 합격했으니 면접 일정 안내한다 말했다. 나는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합격했나? 내 이력이 직무랑 맞았나?”


“한도윤 당신의 영어능력과 건축학과를 나온 학력, 물론 직무에 꼭 필요한 경험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력이 있다고!”


“아…? 내가 먹힌다고?”


헤드헌터의 말을 믿고 그다음 주 화요일 오후 2시에 있을 면접에 응하겠다고 답했다. 나는 스케줄이 잡히고 곧장 팀장에게 다음 주 병원 예약이 있어 오후 반차를 쓰겠다고 했다. 팀장은 유튜브 숏츠를 넘기며 다녀오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화요일.


나는 오후 반차로 일찍 퇴근하고 ㅇㅇ 프리미엄 아웃렛 본사를 찾아갔다. 패션 유통 기업답게 청담동 대로변에 유리로 뒤덮인 건물 15층에 위치했다(아니나 다를까 2층부터 14층까지는 그 대기업의 계열사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걸 번쩍번쩍하다고 해야 하는 건가. 대기업의 건물이라 그런지 품격 있고 프로페셔널한 느낌이 건물 외피와 인테리어에서 풍겼다. 나는 건물 입구 앞에서 고개를 들어 건물을 올려보며 이런 회사에 다니면 조금 으쓱할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면접장에 들어갔고 현직자 3명으로 이루어진 면접관들이 무미건조하게 질문들을 던졌다. 여러 가지 답변을 준비하고 외웠기 때문에 문제없이 답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질문에서 면접관이 한국어로 질문하고 나만 영어로 답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 순간 나는 떨어졌구나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아무래도 아들 떨어진 것 같어. 그래도 서류 합격 한 걸로 만족해야지.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할래.”


그리고 다음날 오전 1차 합격 문자를 받았다.





2차 면접은 임원 면접이라고 한다. 사실상 최종 면접이고 합격하면 처우협의와 건강검진만 남게 된다. 헤드헌터에게서 장문의 임원 면접 안내문과 면접 팁을 받았고 메일의 양과 말투로 볼 때 그 또한 나의 이직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 같았다(아니면 그는 실적이 절실했던가).


곧바로 일주일 뒤에 있을 면접에 박차를 가했다. 평일 낮에는 오합지졸 팀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며 설렁설렁 일했고 저녁에는 두뇌풀가동으로 면접을 준비했다.


모든 예상 질문과 답변을 한글과 영어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했고 나름 면접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친구를 섭외해 내가 준비한 답변을 검토받았다. 마지막 날에는 그 답변들을 달달달 외우고 덜덜덜 떨면서 면접 연습을 했다.


면접 전날 저녁에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왔다.


“도윤 씨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장담하는데 도윤 씨 학력이면 지원자 중에 제일 좋을 거예요.”


“경력이 적은 게 걸린다고요? 1차에서 경력이 좀 있어 보이시는 분들이 왔어요? 이건 제가 대외비로 알려드리는 건데 ㅇㅇㅇ 프리미엄 아웃렛에서는 지금 딱 도윤 씨 연령대로 뽑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경력이 많고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떨어지셨을 거예요.”


“직무에 직접적인 경험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패기와 열정으로 다가가셔야 해요. 제가 적어드린 것처럼 “뼈를 묻는다는 각오”이 부분 꼭 강조하셔서 말씀해주셔야 해요. 보수적인 성향이 있으실 테니 아마 먹힐 거예요.”


헤드헌터는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들을 전했으나 불안한 마음이 들어 통화 후에도 더 연습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걸 했다.


그날 밤은 떨리는 마음에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면접이 떨리는 건지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게 설레어서 떨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2차 임원 면접은 퇴근 후 저녁 7시 15분에 이루어졌다. 헤드헌터 안내문과 같이 대면 면접이 아니라 비대면 면접이었다. 이 면접이 덜 중요한 건지 아니면 임원이 바빠서 그랬는지 화상통화를 면접은 진행되었다.


아이스 브레이킹으로 시작해 일방적인 질문과 준비된 답변이 오고 갔고 몇몇 질문은 준비하지 못했지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잘 이야기했다.


그리고 막바지에 핵심 질문이 들어왔다.


“그래서 꼰꼰 건축에 있을 때 설계사를 컨트롤해봤어요?”


네? 꼰꼰 건축을 다닐 때는 사원 시절이었고 내가 설계사를 다니는데 어떻게 설계사를 컨트롤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히려 발주처에 컨트롤을 당했으면 당할 입장인데 뭔 소리를 하는지 이 뚱딴지야.


“네. 당연하죠. 설계사 컨트롤 100번도 더했습니다. 그러니 절 뽑아주시죠. 하하하”를 원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버렸다. 나는 목표를 위해서는 거짓말도 할 수 있는 그런 배짱 좋은(실제로는 취업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기에 사실대로 그렇지 않았음을 말했다.


“그러면 곤란한데. 이 직무가 설계사를 컨트롤하는 일이 제일 중요해요.”


“설계사에서의 경험과 제가 가지고 있는 매니징 능력으로 설계사를 관리하여 최적의 사업성을 이끌어보겠습니다.”


“할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저는 대신 다른 공정의 협력사를 관리하고 커뮤니케이션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설계사 매니징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설계사 컨트롤 경험은 없다?”


“그럼에도 할 수 있습니다! 입사하게 된다며 뼈를 묻을 각오로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몇 초간 침묵이 흐르더니 면접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나흘 후 탈락 소식을 들었다. 듣고 싶은 말이 있던 사람에게 그 말을 해줄 수 없는 솔직한 사람의 실패였다.





탈락소식을 접한 후 헤드헌터는 아쉬움(아마도 자신의 실적이 채워지지 못한)을 표하며 영어 능력과 경력, 경험 모두 손색이 없었으나 다른 면접자가 점수를 더 획득하여 나는 최종 면접에서는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김칫국 좀 덜 마실걸 후회했다.


임원 면접만 합격하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나는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1차 면접에 합격하고 2차 면접을 준비하면서 나도 가능성이 있겠다는 희망, 들어가면 얼마나 삶이 윤택해질지 상상하면서 설레던 내가 미련해 보였다. 


스스로에게 훌훌 털어버리라고 말했지만 원하는 걸 손에 얻지 못한 자의 씁쓸함은 쉽게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원했던 사람 중 단 한 명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모두 떨어지는 이 게임에서 실패는 당연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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