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May 23. 2022

팀점 NO! 점심시간 독서 모임

[ 02.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 ep.11/회사 ]


나는 현상 이후에 광양에 지어지는 아파트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건축 인허가 단계 중 사업계획승인에 있던 이 프로젝트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새해에 3팀으로 옮겨오면서 이 프로젝트에 의도치 않게 들어왔는데 사실 내가 원하던 조합의 멤버가 아니었다. 새로운 팀에서는 같은 팀 차장님과 같이 해보고 싶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왔는데 현실에서 내 상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른 팀의 차장님이 PM을 맡고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일과시간에는 같이 프로젝트 하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성향이 맞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사업계획승인이다 보니 여러 가지 질문들이 생겨났는데 아무도 제대로 답을 해주는(‘해주는’ 인지 ‘해줄 수’인지는 겪어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이 없었다. PM 차장님은 오히려 이전 프로젝트 샘플을 보고 하라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내가 이상해 보였나 보다. 아무튼 작년 2팀에 있을 때보다는 별로 좋지 않은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책 읽기는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팀점을 하지 않았고 혼자 샐러드를 먹을 때 종종 샐러드를 먹고 싶은 사람 한 두어 명이 잠깐 와서 간만 보고 가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2팀에서 나랑 친하게 지내던 용 대리님이 자신도 점심에 샐러드를 먹고 작업을 하겠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용 대리님은 이전에 소개했던 것과 같이 사진 인스타그램을 하고 계셨다. 꽤 전문적이다. 카메라 본체와 렌즈에 투자도 하고 주말마다 여자친구와 출사도 나가곤 했다. 평일에는 글과 함께 @mogflow 계정에 포스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꾸준함의 힘인지 팔로워도 꽤 있고 몇몇 작가들과 교류도 한다고 했다. 종종 의뢰받아 일러스트도 그려 선물하기도 한다. 용 대리님의 사진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도 있다.


용 대리님이 왜 합류했는지는 아직까지 나도 모른다. 분명 나처럼 팀점이 싫어서가 아니라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용 대리님은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이 있어서 장비를 활용한 작업을 했다. 아이패드에서 어도비 라이트룸으로 사진을 보정하기도 하고,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용 대리님이 합류하고 나서는 나도 길 건너 투썸플레이스에 같이 가는 사람이 생겼다. 우리 둘은 점심시간이 되면 길 건너 투썸플레이스에 가서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정말 갑자기 각자 일에 몰입한다. 정말 갑자기 몰입한다. 서로 말도 잘 걸지도 않는다. 물론 매일매일 그랬던 건 아니고 가끔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화나는 일들에 대해 넋두리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책을 읽고 용 대리님은 보정하는데 썼다. 우리는 그렇게 몇십분 집중을 하다가 12시 55분이 되면 책과 아이패드를 덮고 투썸플레이스를 나와 길을 건넌다. 돌아가는 길은 정말 아쉽지만 그래도 점심시간에 얼마나 했는지 스스로 그리고 서로 뿌듯해한다.


나중에야 명칭이 정해졌지만, 이 독서 모임은 독서를 하는 곳이 아니다. 이름은 ‘독서 모임’이지만 모두가 책을 읽고 싶어 하지 않으니 말이다. 누구는 그림을 그리고 싶고, 누구는 글을 쓰고 싶고, 강의를 듣거나 사진을 보정한다. 그냥 점심시간에 자기 할 일을 하는 조금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위장을 위해 독서 모임이라고 칭하며 다녔다. 물론 나는 독서 모임에서 유일하게 책을 읽었다. 나도 가끔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했다(정말 요즘사는 놓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종종 회사 이야기를 나누거나 미래에 대한 각자의 꿈이나 현재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것들을 나누곤 했다. 비록 나는 대학교 때 동아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마치 내 상상의 사내 동아리의 모습이었다. 중요한 건 여기서는 누구나 솔직하고 가끔은 냉철할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잘되는 상상에 내가 더 뿌듯할 때도 있었으니까.


진심으로 남을 응원해 주는 것은 힘이 든다. 질투나 시기가 종종 섞여 있기 때문인데, 그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큰 노력의 필터와 마인드 컨트롤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내가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응원하듯 다른 사람이 나를 응원해 줄 때 무척이나 많은 힘과 용기가 되어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커뮤니티의 힘이고 공동체의 올바름이다. 회사에서는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서로서로 이용하거나 전략상의 호의와 미소를 보이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물론 회사마다 분위기도 다르고 정치하는 법도 다르겠지만 OO 건축 글로벌 본부의 모습은 딱히 내가 바라던 이상향은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용 대리님의 합류로 독서 모임이 탄생했다. 1년 넘는 힘든 시간 중에 나에게 힘을 주는 모임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점심시간에 책 읽는 나, “너 좀 이상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