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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l 13. 2022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거야

[ 08. 더 프랙티스 ep.31/나]

*제 글은 첫 에피소드 부터 이어져 오는 시리즈입니다. 제 브런치로 오셔서 이전 에피소드를 이어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이 글들은 <퇴사까지 1년 반>(가제)의 초안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을 가.”


이 말을 어디서 처음 들었을까? 군대에서 들었나 학교에서 들었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른들의 사회에 나오면서 꽤 듣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서 사람들은 잘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가만히 있는다. 주변을 살피고 분위기를 본다. 아니. 분위기만 본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까지 안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글로벌 본부에도 그런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데로. 물론 나도 그러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가만히 있기 싫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는 항상 부조리, 부당함, 문제에 대해 아주 예민하진 않았지만, 꽤 강경했다. 어쩌면 enfj의 MBTI를 지닌 나에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언제나 저런 단어들이 등장할 때면 한마디씩 꼭 불만에 대해 표시를 하는 사람이었다. 학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건축 인턴을 할 때도 그랬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도 사회화가 돼가고 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고 화를 피하고자 부조리, 부당함, 억울한 문제들에 눈을 감곤 했었다. OO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었다. 종종 부당한 지시를 받거나 부조리를 겪어도 참고 넘어가곤 했다. 일을 끝내는 게 중요하고 이익을 내는 게 중요하니까. 윗사람이 시키니까. 그러니까 참고, 눈감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부당한 것에 아무 말 하지 않는 내가 싫어졌다. 숨겨져 있던 성향을 참을 수가 없었던데 맞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연히 내가 회사 내 정의를 바로 잡겠다거나, 내부고발자가 된다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최소한 부당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것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결국 그게 나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고, 내가 억울하게 회사에 다니지 않을 수 있는 보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김 소장이 다 같이 야근하는데 회사 근태 시스템에 야근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좀 지나서 주말 출근을 하는데 초과 근무를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 한 마디로 회사 내에 시스템이 있지만 그걸 무시하고 아무런 보상 없이 공짜로 일하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그건 곤란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에 김 소장은 자신의 명령(내 기준에는 부조리)을 따르지 않으려는 나를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말한 내가 좋았다.


물론 미움을 받는다는 건 가만히 있으면 가는 중간에 가지 못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 소장에게 나는 거의 꼴찌에 가까운 팀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내 삶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만히 있으려는 것이냐였다. 물론 계속해서 지금 나에게 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OO 건축을 그대로 다니는 건 중간은 갈 수 있는 선택이다. 어쩌면 사회에서 중간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를 확인한 만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때 이렇게 생각했다.


‘가만히 있는 건 중간을 가는 게 아니야. 그냥 가만히 있는 거야’


가만히 있는 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변화하지 않는 건 중간이 아니라 0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 나는 이게 보장된 중간을 향한 말이라서 사람들이 말한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어서 편하고, 또 적어도 중간을 갈 수 있으니까. 애초에 나는 가만히 있는 성격의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 중간이 안 되고 꼴찌가 되더라도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있는 내가 싫었고, 한마디라도 하는 내가 좋았듯 나는 문제를 직면하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가만히 있는 사람은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게 퇴사가 되었던, 인생의 다른 문제가 되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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