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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l 18. 2022

워라밸의 시작

제천 프로젝트, 나도 이제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09. 부의 추월차선 ep.32/회사]

*제 글은 첫 에피소드 부터 이어져 오는 시리즈입니다. 제 브런치로 오셔서 이전 에피소드를 이어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이 글들은 <퇴사까지 1년 반>(가제)의 초안입니다.



콩사원이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글로벌본부가 야근하는 부서로 손꼽힌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물론 상반기에 꽤 많은 야근을 했다. 나중에 2021년 연말에 총 근무 시간을 동기들과 비교해 보니 2번째 혹은 3번째로 많이 일했었다. 하지만 ‘제천 아파트 신축공사’ 프로젝트로 돌아온 이후에는 조금 언행 불일치를 하고 있었다. 제천 프로젝트는 얼마나 매끄럽게 진행되었는지 야근이 정말 거의 없었다. 물론 김 부장님의 역할이 컸다. 그나마 하루나 이틀 정도 야근을 연달아서 하게 되면 김 부장님은 꼭 나에게 며칠 전 야근을 미리 알려주었고 그 덕에 갑작스러운 야근도 없어져서 좋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김 부장님께 감사하다. 그렇게 조금씩 퇴근 후의 내 삶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어쩌면 제천 프로젝트를 통해 OO 건축에서 일과 삶의 균형의 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야근을 피할 수 없을 때는 마감이 다가올 때였다. 그럴 땐 9시나 10시까지 야근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정말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 이전에는 야근을 하면 기본 밤 11시 막차를 타고 집에 가거나 새벽 한두 시까지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했다. 컨트롤된 야근은 꽤나 효율성도 높여주었다. 오늘은 10시까지 다 끝내겠다고 하면 정말 10시까지 집중해서 끝내거나 거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사실 많은 기업들이 ‘하면 된다’ 정신을 좋아한다. 야근하지 말아야 한다에 ‘하면 된다’ 정신을 쓰면 참 좋을 것을. 9시까지 하는 야근은 OO 건축이 좋아하는 포괄임금제에 포함되는 노동이어서 나는 더 이상 보상휴가를 쌓을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야근이 적은 직원이 되었다. 진짜 바쁘지 않은 기간에는 중간중간 하루씩 보상휴가도 쓸 수 있었다. 보상휴가 개수가 아마 42개에서 퇴사할 때는 37개로 줄었다. 진짜 바쁘지 않은 기간은 없었나 보다.


주말이 보장되어 있고 퇴근 후 저녁 시간이 보장되니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집에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집에서 직접 요리도 해먹을 수가 있었다. 후에는 운동도 하고 한두 시간 사이드 프로젝트를 위해 콘텐츠 기획도 할 수 있었다. 또 주말에는 이틀을 풀로 쓸 수 있었다. 하루는 밖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고 다른 하루는 집이나 동네 카페에서 진득하게 앉아서 작업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케이팝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는 처음 기획했던 10팀의 에피소드를 모두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 후에 방향을 조금 틀어 인스타툰 계정을 요리 계정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아무튼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고 가족이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자유도 생겼다.


글로벌 본부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마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워라밸이 지켜지는 만큼 일과시간에 일을 더 집중해서 해야 했다. 오히려 나는 쓸데없는 야근은 하기 싫었기 때문에 김 소장의 ‘벌써 가냐?’라는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퇴근했다. 나중에 김 소장은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1팀은 다른 지역의 아파트 프로젝트로 바빴는데, 1팀이 일하는 방식은 다 같이 야근하고 다 같이 열심히 해서 다 같이 집에 일찍 가자는 것이었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는 시기였기 때문에 야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점차 나아지기는 했다. 2팀은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맡아야 하는 책임이 커서 야근이 불가피한 팀이었다. 글로벌 본부 3개의 팀이 어찌나 야근을 많이 하는지 하루는 회사 전체가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월요일의 모습을 프린트 때문에 야근하다가 보았는데, 같은 층을 쓰는 다른 본부는 단 1명도 남지 않고 퇴근했는데 글로벌 본부만 단 1명도 빠짐없이 야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글로벌 본부는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최악의 본부로 꼽히곤 했다(매출이 꼴찌라는 것도 감출 수 없다).


이것도 운이었을까? 이런 본부에서 나는 사원 직급으로 야근을 최소화해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워라밸이 지켜지는 삶은 6개월 정도 이어졌다. 이 기간은 나에게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안정된 삶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일과 삶이 사회가 규정한 밸런스를 지키고 있었고, 나는 본부의 다른 직원들보다 비교적 나은 일상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바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실행 할 수 있는 추가적인 시간이 주어졌다. 바쁘디바쁜 건축 업계에서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던 워라밸이다. 나는 이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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