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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Nov 24. 2022

김앤장.

주간 회고록 : 2022년 11월 셋째 주

11월 셋째 주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쇄소에서 책을 인쇄하려면 50만 원을 추가로 내라는 사건과 이제는 재입고가 어려워진 <퇴사 사유서>, 새롭게 시작한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삶과 너무 친절한 상담 말투 때문에 여자로 오해받은 사건, 그리고 단골 카페 사장님과 한 시간 넘게 만담을 나누었던 것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번 주의 하이라이트는 김앤장이었다. 혹여 내게 법적인 문제가 있을까 봐 오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다시 말하겠다. 김장.


김장의 사전적 의미는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이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 김장은 ‘일’이다. 비록 회사나 클라이언트는 아니지만, 우리 가족이 1년에 한 번 치르는 큰일이다. 이를 위해 몇 주 전부터 스케줄을 조정하고 날씨를 체크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목요일 아침부터 안성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김장은 완전히 추워지기 전에 해야 하므로 아직은 따뜻한 가을 날씨에 안도했다. 안성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간단한 짐만 챙기고 할먼네(외할머니댁)으로 향했다. 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할먼네에는 앞마당이 아닌 앞-밭이 있다. 거기에는 엄청나게 큰 배추가 이미 몇 개 뽑혀있었다. 엄마는 벌써 작업을 시작하신 게 분명했다.


도착해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되었다. 올해 김장 멤버는 나와 엄마, 딱 두 명이었다. 평소 서너 명이 하던 일을 둘이서 해야 하니 엄마는 딱 배추 스무 포기만 하자고 하셨다. 작년에는 서른 다섯 포기를 했기 때문에 올해는 절대적인 일 량은 줄어든 것이다.


목표를 정했으니 배추를 뽑고, 자르고, 옮기고, 씻고, 절이는 프로세스를 거쳤다. 어쩌다 보니 배추는 스무 포기에서 스물다섯 포기로 개수가 늘었다. 이유는 즉 슨 배추를 심었던 곳에 양파를 곧이어 심어야 하므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놀랍게도 밭은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온 아들에게 미안했는지 계속 스물다섯 포기가 아니라 스물두 세포기 정도라고 강조하셨다.


김장에 배추만 들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무, 쪽파, 대파, 마늘, 생강, 양파, 갓 파트도 있었다. 계속해서 흐르는 찬물에 씻고, 말리고, 자르고, 채썰기를 반복했다. 재료 준비를 다 해놓고 나니 저녁 9시가 넘어갔다. 여기서 그치면 김장이 아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고무 대야에 절여놓은 배추를 한 번 더 뒤집어서 소금기가 골고루 섞이게 하는 작업을 해야만 잠자리에 들수 있다.


다음날 해가 뜨는 7시쯤, 엄마가 나를 깨우셨다. 배추 체크, 재료 체크 후 아침을 먹고 또 김장은 이어진다. 각종 젓갈과 재료를 넣은 소를 제조하고 물기를 꽉 짠 절인 배추를 가져와 소와 함께 버무린다. 모든 배추가 빨갛게 물들어 김치통으로 들어가면 모든 메인 작업은 끝난다. 아이고. 벌써 11시다. 서둘러 뒷정리를 했다.

그래도 이 모든 걸 보상해주는 음식이 있다. 한 시간 넘게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 빨갛다 못해 매운 김칫소를 배춧잎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뽀얀 고기를 올려서 싸 먹으면 모든 노동이 한 번에 보상된다. 1년에 한 번, 딱 이때만 맛볼 수 있는 이 귀한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


나는 “NO 김장 NO 수육”을 외쳤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즐겁게 나누어 먹고 이튿날까지 또 먹은 수육으로 김장은 마무리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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