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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r 02. 2021

개학, 개화, 그리고 다시 봄

계절의 순환에 일상도 제자리를 향하고

다시, 봄입니다. 겨울 방학을 마친 아이들이 개학했습니다. 긴 겨울잠에서 깬 동식물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초2 아들이 첫 등교를 했습니다. 지난해 잃어버린 초1을 만회하려면 부지런히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부모는 아침부터 걱정이 앞섰습니다. 코로나로 여전히 뒤숭숭한데 별일 없을까, 하교 뒤 집은 잘 찾아올까. 아내는 그닥 걱정이 없다는 표정입니다. 걱정이 안 되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합니다.      


“왜 걱정이 안 되겠어.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앞으로 계속될 거야. 혼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갈 때, 운전면허를 따고 첫 운전을 할 때도 그럴 거야. 언제나 처음은 두려운 법이니까.”   

  

코로나 시대도 마찬가집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두렵고 무서운 거겠죠. 백신 역시 맞아도 괜찮은지 확인되지 않은 이상 불안과 불신이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제 아내 말마따나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고, 4차 대유행이 일어나고, 집단 면역이 늦어지면 말이죠. ‘위드(with) 코로나’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시대'라는 계절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일상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겁니다.


봄이 온다고 별일 있겠습니까
밥 그런대로 먹으면 되고
빚도 늘면 늘지 줄지 않겠고
꽃 피기 시작한다고 소문 돌면
저승꽃 화창하게 만발할 테고
진작 귀먹고 그리운 사람은 불러도
딴전 부릴 테고
다아 지금처럼도 괜찮습니다
다만, 길거리에서 오줌 마려울 때
항상 굳게 잠긴
정류장 앞 건물 화장실만이라도 열려
시원하게 일 볼 수 있는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춘화 <봄>     

길가에 봄꽃이 개화를 시작했습니다. 개나리 꽃망울이 노란색 움을 틔우고 있습니다. 며칠 있으면 어릴 적 동네 어귀 논둑에서 봤던 제비꽃부터 동산을 물들였던 진달래와 개나리, 목련, 벚꽃, 매화가 흐드러질 테지요.   

길가 꽃망울이 봄소식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포근해진 날씨에 아랫녘에는 봄꽃이 30년 전보다 빨리 피었다고 합니다. 봄바람을 타고 남도에서 출발한 전령사는 중부지방을 지나 서울을 거쳐 북녘까지 생기 있게 살아 올라갈 겁니다.    



다만, 올해도 꽃놀이와 봄의 축제는 즐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지난날 즐거웠던 한때를 추억하며 내년 봄을 기약해야겠습니다. 대학 시절, 학교 뒤 딸기밭에 올라가 싱싱한 딸기를 안주 삼아 친구들과 낮술 한잔 진하게 마시던 기억은 봄날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입니다.      


어김없이 봄은 왔고, 코로나와의 긴 싸움에도 끝이 보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봄은 ‘희망’입니다. 우리네 일상을 휘감고 있는 바이러스도 봄비와 봄바람에 씻기고 실려 날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오후, 기분 좋은 미풍을 맞으며 아무 데나 걸터앉아 시를 쓴다. 이미 와 버린 겨울에 와들와들 떨던 빼빼 마른 고목도, 찬바람에 떠밀려 날갯짓 한번 버겁던 까치도, 오후의 따사함에 노곤한 하루를 보낸다.

난 그들과 시를 쓰련다. 텃밭의 식물도 볕에 녹는 눈을 조롱하듯 싱싱하게 돋아나고, 그 위를 기어 다니기도, 날아다니기도 하는 곤충들이 재밌다. 귓등 간질이는 거미의 장난도 더 이상 귀찮지 않다. 아직 봄은 멀다.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사람들은 어디론가 일광(日光)을 하러 떠난 듯 조용하다. 그래서 한적하고 고요한 오후에 내 곁엔 앙상한 나뭇가지와 까치집과 텃밭의 식물과 곤충과 작은 거미와 햇빛에 반사되어 이따금 반짝이는 거미줄 몇 가닥이 있다.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오후, 난 양지바른 데로 나와 시를 쓰고, 까치들은 종종걸음으로 산보 다닌다. 저만치 봄이 온다. -류재민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오후에 쓰는 시>


개학 첫날, 걱정했던 아들은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선생님도 만나고, 친구도 사귀었는데, 이름은 모른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내일도 학교에 가니, 천천히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작년과는 다른, 다시 봄입니다.      


오늘 들려드릴 노래는 브리의 ‘꽃놀이’입니다. 노래로나마 만끽하세요~

*영상출처: [브리 Bree] 꽃놀이 MV - YouTube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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