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순환에 일상도 제자리를 향하고
“왜 걱정이 안 되겠어. 하지만 그런 걱정은 앞으로 계속될 거야. 혼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갈 때, 운전면허를 따고 첫 운전을 할 때도 그럴 거야. 언제나 처음은 두려운 법이니까.”
봄이 온다고 별일 있겠습니까
밥 그런대로 먹으면 되고
빚도 늘면 늘지 줄지 않겠고
꽃 피기 시작한다고 소문 돌면
저승꽃 화창하게 만발할 테고
진작 귀먹고 그리운 사람은 불러도
딴전 부릴 테고
다아 지금처럼도 괜찮습니다
다만, 길거리에서 오줌 마려울 때
항상 굳게 잠긴
정류장 앞 건물 화장실만이라도 열려
시원하게 일 볼 수 있는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춘화 <봄>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오후, 기분 좋은 미풍을 맞으며 아무 데나 걸터앉아 시를 쓴다. 이미 와 버린 겨울에 와들와들 떨던 빼빼 마른 고목도, 찬바람에 떠밀려 날갯짓 한번 버겁던 까치도, 오후의 따사함에 노곤한 하루를 보낸다.
난 그들과 시를 쓰련다. 텃밭의 식물도 볕에 녹는 눈을 조롱하듯 싱싱하게 돋아나고, 그 위를 기어 다니기도, 날아다니기도 하는 곤충들이 재밌다. 귓등 간질이는 거미의 장난도 더 이상 귀찮지 않다. 아직 봄은 멀다.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사람들은 어디론가 일광(日光)을 하러 떠난 듯 조용하다. 그래서 한적하고 고요한 오후에 내 곁엔 앙상한 나뭇가지와 까치집과 텃밭의 식물과 곤충과 작은 거미와 햇빛에 반사되어 이따금 반짝이는 거미줄 몇 가닥이 있다.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오후, 난 양지바른 데로 나와 시를 쓰고, 까치들은 종종걸음으로 산보 다닌다. 저만치 봄이 온다. -류재민 <모처럼 볕이 들어 좋은 날 오후에 쓰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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