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열십자 모양의 초록색 플라스틱 부메랑을 사 들고. 마스크로 반은 덮은 얼굴이지만, 아들의 기분은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휴일의 오후, 운동장은 비교적 한산했습니다.넓은 운동장은 누군가 부메랑에 맞을 일도, 나무에 걸릴 일도 없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신난 아들이 먼저 힘껏 부메랑을 던졌습니다. 제 눈에는 153km 투심 패스트볼처럼 보였습니다. 동시에 옛날 드라마(천국의 계단이었나?)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부메랑은 ‘슈슉’ 소리를 내며 공중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합니다. 출발지까지 오지 못하고, 공중에서 꺾이자마자 바로 땅에 떨어집니다. 하긴 700원짜리가 오죽하겠습니까. 이래서 ‘싼 게 비지떡’이라고 했나 봅니다. 그래도 아들은 무척 재밌나 봅니다.
땅에 떨어진 부메랑을 집어 다시 날리고, 또 뛰어가 주워 들고 날리기를 무한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내 체력이 바닥났는지 저한테 부메랑을 맡긴 채 그네를 타러 갑니다. 얼마나 뛰었는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아홉 살 아들이 153km 투심으로 부메랑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들이 그네를 타고 노는 동안 저는 혼자 부메랑을 던지고 놀았습니다. 회전력은 좋았지만, 여전히 원심력과 구심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몇 번 해보니 묘한 매력이 있고, 은근히 중독성이 생기더라고요.
그네를 타고 놀던 아들이 다시 부메랑을 잡고 운동장 한가운데 섰습니다. 몇 번을 던지고 받다 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야구방망이와 공을 들고 운동장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빠져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공에 맞으면 다치겠다 싶었습니다.
아들 손을 잡고 운동장을 빠져나왔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근처 마트로 들어갔습니다. 아들은 당당하게 1.5리터짜리 레몬 맛 주스를 집어 들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저랑 같이 놀아줬으니, 저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랑 같이 노니까 어땠어?” “좋았어.” “뭐가 좋았어?” “같이 놀아서 좋았어.” “그러니까 같이 노니까 뭐가 좋았냐구?” “같이 놀아서 좋았다구.”
아이들은 부모가 같이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좋은가 봅니다. 시끄러운 두 남자가 집을 비운 사이, 아들 둘을 키우는 아내느님은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졌으니 '잠깐의 천국'을 느꼈을 테고요.
일주일이 지나면 부메랑처럼 다시 일요일이 돌아올 겁니다. 그러면 저는 또 아들과 함께 운동장을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아들이 언제까지 저와 시간을 보낼까요? 조금 더 크면, 운동장을 점거한 중학생들처럼 친구가 더 좋다고 내빼겠지요.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웃퍼집니다. 하하하. 흐흐흐. 흑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