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후회가 덜 합니다
별이 지다
맑은 별무리 돋아나고
보름달 휘영청 길 밝히던 밤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려든 용달차 한대
마지막 차선 건너가던 울 아버지
쾅-하고 밀어붙였다
눈동자에
노란 달빛 스며들다 이내 감기고
잘록한 허리 비쩍 마른 두 다리
별처럼 부서져 바닥에 흩어지고
이승의 혼 별과 별 사이로 흘러갔다
한참을 울다 깨다 울다 깨다
꿈이었으리
통화 버튼 누르면 시골집 구들장 베고 누워
무뚝뚝한 쉰 소리 들을 줄 알았던 바람은
꿈인가, 생시인가
추석 명절 이틀 전, 별이 사라졌다 -류재민 <별이 지다>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개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펴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