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기억력도 서서히 녹나 보다
낙타
동물원에서 봤었지
덩치 큰 그 녀석.
속눈썹은 늙은 작부의 눈 화장처럼
길고 풍성했고,
시골집 송아지마냥 생긴 눈망울은
알사탕만 한 눈물방울 또르륵 떨어질 듯
영롱했다.
얼굴부터 덥수룩한 털은 턱과
목 아래까지 덮어 자태를 뽐냈고,
짐짝처럼 매단 등허리 혹 두 개
인생의 고개처럼 굽이친다.
땅을 딛고 서 있는 네 다리는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모를 만큼
가늘고 여위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빈자의 오늘인 양
불안하고 초조하고 위태롭다.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듯
기품 있는 동작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타카마 사막 어디서 태어났을까,
사하라를 지나왔을까, 고비를 지나왔을까.
어디서 길을 잃고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막의 모래바람맞으며 걸어가는
낙타들의 행렬이, 보이는 듯 사라진다. -류재민 <낙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