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휴일, 가족 나들이를 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멀리 가진 못하고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보고, 서점 근처 공원을 들렀습니다. 아이들은 그네를 타고,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저와 아내는 책을 보며 일광욕을 즐겼습니다. 온갖 곤충에 파리들까지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4월 봄볕은 유난히 눈부시게 쏟아졌습니다. 초여름 날씨처럼 더워 반 팔을 입은 이들도 눈에 띄었는데요.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모처럼 나들이에 마냥 신났습니다. 언제 저렇게 컸나 싶을 만큼, 두 녀석 모두 다리가 부쩍길어졌습니다.
한참을 놀던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며 우리가 앉은 벤치로 터벅터벅 걸어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빵집으로 갈지, 일반음식점으로 갈지 갈림길에 섰습니다. 빵보다 밥이 좋다는 의견에 전부 동의했습니다. 월남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랜만에 외식입니다. 뛰논 다음에 밥이 들어가니 얼마나 맛있을까요. 와구와구 먹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식당 창밖 베란다에는 화분의 꽃들이 만개해 운치를 더했고, 그 너머로 대로변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고 있었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을 준비하는 4월의 모습이 분주해 보였던 하루입니다.
4월 중순의 휴일, 가족들과 집 근처 공원을 찾았습니다.
영국의 시인 토마스 앨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합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4월이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겨울이 포근하다고 합니다.
얼어붙은 땅이 녹고, 봄볕과 새싹과 곤충이 날아다니는 4월이 누군가에는 잔인할지 모릅니다. 봄이 왔건만, 완전한 봄을 맞이하지 못한 건 비단 계절의 변화무쌍함만은 아닌 까닭입니다.
해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바이러스의 공포, 그에 따른 일상의 불편과 심리적 불안이 우리네 삶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결핍의 삶 속에서 심신은 곤궁하고, 궁핍합니다.
국민의 맘을 모르는 정치는 여야가 따로 놀고, 기세 등등했던 거대 여당은 몰락의 길로 접어든, 그래서 어쩌면 앨리엇이 노래한 4월이 그들에겐 참 잔인할 수도 있겠다 싶은.
하지만 저는 4월의 휴일이 이렇게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가족과 공원 나들이도 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며칠 전 개막한 프로야구를 시청하며, 좋아하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행복은 찾아오길 기대하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것 아닐까요. 어린 시절 소풍의 백미였던 ‘보물찾기’처럼 말이죠. 행복한 휴일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