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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y 01. 2021

부모님은 천년만년 살 수 없으니까

살아계실 때 효도해야 후회가 덜 합니다

지인 부친상에 다녀왔습니다. 고인은 향년 89세, 우리나라 나이로 90세입니다. 호상이라고 하지만, 유가족들에게는 서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는 건 그래도 축복입니다. 준비 없는 이별과 마주한 사람들에 비할 바 아니지요. 떠나기 전에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해 드리고 보내도 서운한데, 그마저 못한 상황이라면 얼마나 서럽고 애달플까요.     

 

제 아버지가 그랬습니다. 3년 전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운명하셨거든요. 임종조차 못 보고, 장례는 또 어떻게 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달에 걸친 사고 수습에 애도할 겨를마저 없었던, 비통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잘해 드릴걸, 비싸도 드시고 싶은 음식 맘껏 사드릴걸, 돈이 들어도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보내 드릴걸, 이제 와 후회막급입니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소리는 저처럼 막상 닥쳐봐야 실감하나 봅니다.      

별이 지다

맑은 별무리 돋아나고
보름달 휘영청 길 밝히던 밤      
저쪽에서 이쪽으로 달려든 용달차 한대
마지막 차선 건너가던 울 아버지
쾅-하고 밀어붙였다     
눈동자에
노란 달빛 스며들다 이내 감기고
잘록한 허리 비쩍 마른 두 다리
별처럼 부서져 바닥에 흩어지고
이승의 혼 별과 별 사이로 흘러갔다     
한참을 울다 깨다 울다 깨다
꿈이었으리  
통화 버튼 누르면 시골집 구들장 베고 누워
무뚝뚝한 쉰 소리 들을 줄 알았던 바람은
꿈인가, 생시인가     
추석 명절 이틀 전, 별이 사라졌다   -류재민 <별이 지다>

좀 더 관대해야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고, 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아등바등 살아봐야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나, 땅에 묻히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제아무리 권력이 높다 한들, 재물이 많다 한들 저승 갈 때 싸 짊어지고 갈 수 없으니까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려면, 하루를 살아도 사람답게 살아야겠습니다. 부모님 은혜가 크고 높다는 걸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니, 아버지 부르지 말고 생전에 잘해 드립시다. 어버이날이 일주일 남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아버지,
술 한 잔 걸치신 날이면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어머니,
파스 냄새 물씬한 귀갓길에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

내 가슴에 슬픔의 칼이 돋아날 때
나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아요
스무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고
어머니, 당신의 소망은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이젠 대학 나와도 내 손으로
당신이 꿈꾸는 밥을 벌 수도 없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그래요,
난 절대로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
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난 결코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아버지, 당신은 나의 하늘이었어요
당신이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서 떠밀려
어린 내 가슴 바닥에 떨어지던 날
어머니, 내가 딛고 선 발밑도 무너져 버렸어요
그날, 내 가슴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공포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새겨지고 말았어요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돈 없으면 죽는구나
그날 이후 삶이 두려워졌어요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알아요, 난 죽어도 당신처럼 살지는 않을 거예요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
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개쳐야 하는
이런 세상을 살지 않을 거예요
나는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어요
돈에 미친 세상을, 돈이면 다인 세상을

아버지, 어머니,
돈이 없어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하늘입니다
당신이 잘못 산 게 아니잖아요
못 배웠어도, 힘이 없어도,
당신은 영원히 나의 하늘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나는 없이 살아도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나는 대학 안 나와도 그런 짓 하지 않았다고
어떤 경우에도 아닌 건 아니다
가슴 펴고 살아가라고

다시 한번 예전처럼 말해주세요
누가 뭐라 해도 너답게 살아가라고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고
너는 엄마처럼 아빠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으라고
다시 한번 하늘처럼 말해주세요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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