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통령 후보의 유세 현장 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거리에는 대선 후보를 응원하러 온 당원과 지지자 등 인파로 붐볐는데요. 그들 못지않게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저도 한 귀퉁이에서 손을 달달 떨면서 열심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습니다.
후보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연신 연단 앞을 오갔습니다. 방송용 카메라부터 사진기자용 카메라까지 카메라 퍼레이드를 방불케 했는데요.
그 사이로 삼각대에 핸드폰을 달아 후보 연설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보였습니다. 요즘에는 어느 현장이든 유튜버들이 기자들만큼이나 많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기자인지 유튜버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제가 오늘 다녀온 모 대선 후보의 거리 유세 현장 모습입니다. 추위에도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따뜻한 실내에서 칼바람 부는 거리의 풍경과 현장의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세상입니까. 그런데요. 선한 유튜버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짜뉴스’라고 들어보셨죠? 거짓을 진실인 양 꾸며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언론은 ‘팩트(사실)’에 기반하는데요. 가짜뉴스 생산자들은 실수가 아닌 의도를 갖고 접근합니다. 현장에서 일어난 일반적인 상황을 인위적으로 편집하고 조작해 ‘뉴스’라고 사람들 앞에 내놓습니다. 그냥 내놓는 것도 아닙니다. ‘의혹’을 만들어 내놓습니다. 그걸 본 사람들은 가짜가 진짜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엉뚱한 사람만 잡습니다. 바보가 되거나, 천하의 불한당이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가짜뉴스는 ‘오보(誤報)’와는 구분됩니다. 어떻게 구분되냐고요? 의도성 여부입니다. 오보는 실수로 잘못된 정보를 내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가짜뉴스는 거짓을 일부러 진실인 것처럼 꾸민 걸 말합니다. 말 그대로 허위조작 정보입니다. ‘찌라시’라고도 부르죠.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4차례 포격을 했다’라는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는 오보에 가깝습니다. 일부 언론사(주로 통신사)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미리 보도했다 삭제하는 실수를 심심치 않게 저지릅니다.
속보 경쟁이 낳은 부작용일 수도 있고요. 내부 시스템의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시나리오를 예상해 써 놓은 기사 중 일부가 실수로 출고됐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세월호 전원 구조’ 속보도 대표적인 오보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코로나 백신에 살균제가 들어 있다’ 거나 ‘초등학생이 백신을 맞고 이튿날 사망했다’라는 건 ‘가짜뉴스’입니다. 없는 사실을 꾸며냈기 때문입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초등학생이 백신 접종 이후 사망한 사례는 신고나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가짜뉴스는 백신의 불신을 키워 접종을 기피하고 거부하게 만듭니다.
가짜뉴스는 휘발성이 강합니다.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가죠. 어떻게 주워 담지도 못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법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요. 실제 프랑스와 독일, 싱가포르에는 직접적으로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 침해와 언론 탄압이라는 논란 속에 이제나저제나입니다. 현행법(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는데요. 그사이 무고한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유명 BJ, 운동선수가 가짜뉴스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에도 해를 끼칩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토론’을 예로 들어볼까요? 거짓과 잘못된 정보를 놓고 어떻게 정상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또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고 한다면, 내 손으로 만든 대통령과 정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확인되지 사실과 근거 없이 쏟아내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기본적인 ‘합의’마저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극단의 이데올로기를 부채질하면, 분열과 갈등에 ‘국민 통합’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대선이 2주일 남았습니다. ‘앞으로 제대로’도 좋고,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도 다 좋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짜뉴스부터 ‘제대로 바꾸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