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산책로를 걷다, 문득

시를 썼다

by 류재민

가로등 옆 소나무 세 그루, 반짝이는 별 하나.

오랜만이구나.

풀벌레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내가 걷는 길은, 고요하다.

하천 변 청둥오리 몇 마리

목 축이다 놀라 날아갈까

가만히 가만히 걷는다.


그네 타던 아이들은 엄마 손 잡고

집으로 돌아갔을까.

휴일 내내 기계를 돌리던 인부들도

집으로 잘 들어갔을까

우람한 쇳덩이들만 공사장 한쪽에서 숨 돌리네.

산책로는 1년 넘게 정비 사업 중이다.

돌을 깨고, 흙을 나르고, 물을 막고, 다리를 헐었다.

새 돌과 흙과 물과 다리를 들이고 있다.

공사장 가림막에는

‘소형아파트 수익률 10%(1억에 2채) 중도금 무이자’

분양 전단이 바람에 나부끼고

개발과 환경의 공존, 그리고 시민의 행복한 삶.

꽃나무와 풀벌레와 청둥오리들이 꺾이고 다치지 않기를

부디 바라며 걷는다.


소나무 옆 가로등, 그 위로 빛나는 별 하나.

그 아래 걸어가는 한 사내의 뒷모습.


단골 커피숍 베란다 의자에 앉아

마음씨 좋은 사장님한테 종이와 펜을 빌려

한 글자 몇 글자 끄적여놓고,

‘시(詩)’라고 쓴다.

오랜만이구나.

집으로 오는 길에

빵을 만들다 기계에 끼여 죽은 청년,

계열사 공장에서 40대 중년이 손가락이 잘렸다, 는 뉴스를 봤다.

내 이웃이 다치고, 깨지고, 죽지 않기를

바라고 빌며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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