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1. 꿈의 바닷길
천황은 물어물어 왜국의 가마터를 찾아갔다. 돌가마 두 개가 있었는데, 거기서 나온 그릇이나 옹기는 볼품없었다. 그저 밥을 담아 먹고, 물을 담아 마시고, 물건을 담을 따름이었다. 기물을 본 천황은 왜국에서 만든 기물이 겨우 이 정도인가, 하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우리가 만든 물건이 결국은 통하고 말 것이야.’
천황은 가마장을 만났다. 키는 작고 몸집도 왜소했다. 변발인 ‘츤마게’에 ‘ㅠ’자형 나막신을 신었다. 얼굴과 팔다리 곳곳에 상처투성이였다. 가마를 굽는 동안 데인 흔적이었으리라. 천황은 봇짐을 열어 장천 가마터에서 가져온 기물을 몇 개 꺼내놓았다. 밥그릇과 다기 종류였다. 가마장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다. ‘세상에 이런 물건이 있다니’ 하는 표정이었다. 다기 받침을 볼 때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스고이, 스고이’를 연발하며 감탄했다.
천황은 가마장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장천에서 만든 기물을 왜국에서 팔리는 금액에 공급해 주겠다는 것이다. 가마장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성능이나 기능, 예술성 등 다방면에 우수한 기물을 같은 값에 넘기겠다니. 낯선 이방인이 사기를 치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천황의 성정이 누구를 속이거나 함부로 대할 이가 아님을 금방 알아차렸다. 가마장은 천황의 순수함과 진정성을 신뢰했다. 첫 거래가 어렵지 않게 성사됐다. 장천에서 구워낸 기물은 매달 초하루 배를 통해 왜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1년 동안은 천황이 일꾼들과 함께 물건을 전달하고 삯을 받기로 했다. 천황은 계약서를 쓴 종이를 봇짐에 조심스럽게 접어 넣었다. 다음 날 들뜬 마음으로 부둣가로 향했다. 어서 가서 기쁜 소식을 가마터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천황은 장천에서 타고 온 목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보름 전 장천만을 떠날 때 본 갈매기 떼가 여전히 높게 날았다. 배에서 내린 천황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바다 물비린내와 생선 비린내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행수 오셨소. 낯빛에 생기가 도는 것이 어째 갔던 일이 잘된 모양인 갑소?”
“아, 이 사람아. 그럼 우리 행수가 어떤 사람인디. 암것도 못 건질 거 같으면 그 먼 데를 혼자 갔을까.”
가마터 일꾼들은 천황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천황은 왜국에서 본 것과 먹은 것과 만난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봇짐에서 거래 계약서를 꺼내 일꾼들 앞에 내놨다. 왜국말로 써진 글씨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천황은 조곤조곤 내용을 설명했다. 행수의 첫 성과에 일꾼들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아내 서 씨와 두 아이도 기작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행수가 돌아온 가마터에는 생기가 흘러넘쳤다. 이튿날부터 기물을 빚고, 빚은 기물을 굽느라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흙 채취부터 수비질(흙을 물속에 넣고 휘저어 이물질을 없애는 일), 흙 밟기, 성형을 만들고, 굽을 깎고, 가마에 장작을 넣는 절차에 역할은 분업이었다. 일꾼들의 이마와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래도 한결같이 힘든 기색은 없었다. 패망한 나라에서 적어도 삶의 목표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월과 성이 아버지와 일꾼을 돕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들에게 가마터는 더 이상 놀이터가 아니었다. 천황에게 왜 나라가 꿈의 바닷길이었다면, 두 아이에게 가마터는 새로운 ‘꿈의 터전’이었다. 다만 천황과 두 아이, 그리고 가마터 일꾼들조차 앞으로 일어날 일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날이 저물었다. 가마터에는 식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일꾼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종일 더운 입김을 몰아쉬던 천황과 가족들도 땀을 닦던 하얀 광목천을 목에 두르고 하산했다. 하산길에 이름 모를 들꽃과 풀냄새가 기분 좋은 향기를 발산했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며 더위를 식혔다. 부엉이와 소쩍새와 귀뚜라미는 뭐가 좋은지 밤새 울었다. 녹지근한 피로가 몰려왔다. 천황은 눈을 감았다. 모처럼 깊은 잠을 잤다. 그리고 기묘한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