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2. 새로운 터전
장천을 출발한 배는 순항했다. 배가 물살을 가를 때마다 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포말을 일으켰다. 하얀 포말은 푸른 바다와 제법 잘 어울렸다. 태어나서 처음 배를 타본 천왕이었다. 배가 나가는 속도에 따라 물줄기의 세기가 달라졌다. 천왕은 신기한 표정으로 배 아래를 한참 동안 내려다봤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메스꺼움과 어지럼증을 느꼈다. 속이 울렁거리더니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 파도는 높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배 밑을 보고 있던 탓이었다. 천왕은 갑판 난간을 겨우 붙들었다. 그러고는 바다를 향해 욕 지기를 해댔다. 먹은 것이 없어 넘어오는 건 없었고, 왝왝거리는 소리와 걸쭉한 침만 줄줄 흐를 따름이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기력이 달린 천왕은 그대로 갑판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하늘을 바라보고 두 팔을 벌린 채. 마치 바다를 뒤집어 놓은 듯, 푸른색 하늘에 포말 같은 흰 구름이 배가 지나가는 방향대로 따라 흘렀다. 천왕은 숨을 크게 내쉬며 성난 속을 달랬다. 이틀 밤낮을 항해한 배는 사흘째 되던 날 오후 왜 항에 닿았다.
왜 항은 광활했다. 장천만 보다 몇 배가 큰 규모였다. 장천만에서 보던 갈매기를 왜 항에서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천왕은 승객들을 따라 배에서 내렸다. 고향을 떠난 것도 처음이지만, 이국땅을 밟아보기도 난생처음이었다. 그는 왜국 땅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항구 주변은 꽤 소란스러웠다. 상인들은 하역을 마친 물품들을 나귀가 끄는 수레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기모노와 유카타를 입은 왜인들이 바삐 움직였다. 일꾼을 여럿 끌고 다니는 남성도 있고, 하인이 끄는 말을 타고 가는 고고한 여성도 있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내달렸다.
천왕은 어디로 가야 할지 난감했다. 마침 그의 눈에 허름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간단히 요기하고, 가마소 위치도 물어볼 겸 들어갔다. 식당 안 손님들은 대개 왜인들이었으나, 천왕과 같은 배를 타고 온 백제인들도 더러 보였다. 그들은 천왕과 같은 말을 썼다. 왜국말과 백제말이 음식 냄새를 타고 뒤섞였다. 두 나라의 말은 물과 기름처럼 합쳐지지 못하고 빙빙 맴돌 따름이었다. 천왕은 국밥을 시켜 놓고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나왔다. 국밥 안에는 선지와 보리밥이 말아 있었다. 천왕은 수저로 국물부터 한술 떠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가벼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뱃멀미로 사흘 내내 죽 한 그릇 제대로 먹지 못해 장이 꼬인 듯했다. 그래도 육지에서 먹는 첫 끼니는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천왕은 그렇게 왜국에서 첫날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