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몰라도
나는 오늘도 눈 빠지게 달렸다
비가 온다고 했다. 아니, 왔다. 오다 잠시 멈췄다. 냉큼 운동장으로 가 몸을 풀었다. 목도 돌리고, 어깨도 돌리고, 허리도 돌리고, 발목도 돌리고, 돌릴 수 있는 신체 기관은 죄다 돌렸다. 여느 때보다 빨리 돌렸다. 비 오기 전에 잽싸게 뛰고 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냅다 뛰었다. 운동장 트랙은 비가 내린 탓에 젖어 있었고, 더러는 미끄러웠다. 비가 오다 잠깐 멈춘 순간, 체감 습도는 99% 이상이었다. 지금 한가롭게 습도 타령할 때가 아니지, 라며 비가 오기 전에 얼른 출발했다. 웬걸, 2킬로미터 구간부터 비가 뚝뚝 떨어졌다.
그래, 뚝뚝 정도야 살짝 맞아주지 뭐. 3킬로미터 구간을 지나자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맘먹고 8킬로미터 뛸 작정이었는데. 500미터를 더 가니, 비는 ‘뚝뚝’에서 ‘쏟아짐’으로 바뀌었고, 500미터를 더 가니, 아예 쏟아부었다. 머리도 젖고, 옷도 젖고, 머리띠도 젖고, 양말도 젖고, 운동화도 젖었다. 몸과 몸에 걸친 건 다 젖었다. 그것도 흠뻑!
이걸, 어쩌지? 멈춰야 하나? 겨우 4킬로미터밖에 안 왔는데. 못해도 5킬로미터는 뛰어야지. 그래야 페북에라도 올리지, 그래야 덜 쪽팔릴 거 아녀!! 그래서 그 비를 맞으며 꾸역꾸역 5킬로미터를 채웠다. 5킬로미터를 뛰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어차피 버리고 젖은 몸, 1킬로 더 뛴다고 큰일이라도 날까.(이게 바로 마라톤에 중독됐을 때 나타나는 고약한 현상이다.) 꾸역꾸역꾸역 6킬로미터를 채웠다. 그 이상은 때려죽여도 못 뛰겠다. 비가 쏟아붓는 정도가 아주 캐리비안 급 물벼락이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건,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자꾸만 눈으로 물기가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잘못하다가는 미끄러져 넘어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즐겁게 뜀을 뛰다가 그대로 멈춰라 했다. 가져갔던 수건은 다 젖었고, 가방 안에 있던 핸드폰도 젖었고, 자동차 키도 젖었다.
유일하게 젖지 않은 게 있으니, 그건 바로 마음이었다. 내 마음만은 뽀송뽀송했다. 이 날씨에도 뛸 수 있는 멀쩡한 두 다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이 있다는 것, 그리고 곁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뛰고 나서 샤워하러 갈 집이 있다는 것. 그 모오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마라톤은 그 맛에 하는 것이리라.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작년에 참가했던 대청호 마라톤대회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올해는 하프 코스에 도전하려 했지만, 주변에서 “그러다 무릎 작살난다”라고 겁을 주는 통에 다시 10K에 도전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기록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
참, 이상한 건, 오늘 기록이 비가 오지 않는 날 달린 것보다 1분가량 단축됐다는 거다. 기묘한 일이다. 비가 막 쏟아지니까 나도 몰래 ‘생존의 법칙’이 작용한 탓인가? 비 사이로 막 가처럼? 무튼, 개운하게 샤워 한 판 하고 나와 마사지기에 발 담그고 브런치를 쓰는 지금까지 무릎은 암시롱 안 한다. 앞으로도 그러길 빈다. 그런데 잠깐만, 어라? 아아아아아아아앗 내 머리카락 어쩔 ㅠㅠ
P.S 난 참 복 받은 놈이다. 암웨이 사업을 하는 아내가 머리카락 나는 레이저 헬멧을 사줬기 때문이다. 두피에 뿌리는 에센스도 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그걸 머리에 칙칙 뿌리고 나서 철모처럼 생긴 헬멧을 썼다. 난 지금 그걸 쓰고 앉아 브런치를 마저 쓴다.
“새티니크 어쩌고저쩌고 레이저 엘 400 시작합니다... 배터리 충전이 필요합니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