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Nov 14. 2023

코로나에 놀란 가슴 빈대보고 식겁한다

1년을 굶어도 안 죽는다는 독종을 어찌할꼬

녀석의 등장 소식에 설마 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인공지능(AI)과 3차원(3D) 프린팅 등 신기술과 자율주행, 에어택시, 드론 등 첨단 서비스가 출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에구머니 빈대라니!      


글쎄, 요 녀석은 어디 숨어있다 쨘, 하고 나타난 걸까. 유럽에서 왔을까, 아프리카에서 왔을까, 인도 고비사막에서 왔을까, 부카니스탄에서 왔을까. 출처 불명의 빈대가 전국 각지에서 출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심지어 내가 사는 충청도까지 왔. 이쯤되면 습격에 가깝다.     


어렸을 적에, 머리에 이가 우글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하얀 ‘D.D.T’ 가루를 머리에 뿌리거나 바른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나뿐만 아니라 또래 아이들이 다 그랬다. 어른들도 머리에 이를 고 살았다. (경고! 여기부터 비위가 약한 분들은 비추!)   


하던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할머니와 한방을 썼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신문지를 방에 펴 놓고 머리를 빗었다. 참빗으로 고운 머릿결을 쓸어내렸다. 참빗을 신문지 위에 대고 손톱으로 쓱 긁을라치면, 신문지 위에 까만 물체들이 떨어졌다. 밭에서 깨를 털고 오셨나? 아니다. 그들은 살아서 기어 다녔다. 스멀스멀. (윽, 소오름!!)      

 할머니는 손톱으로 살아 움직이는 녀석들을 꾹 눌러 죽였다. 어떤 녀석들한테서는 피가 나왔는데, 그것이 할머니 피였는지, 내 피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할머니 다음 차례는 나였고, 그다음은 두 동생이었다.     

 

우리 머리통에서도 할머니 머리에서 떨어졌던 녀석들이 쏟아졌다. (몸이 근질거리지 않는가?) 언제부터 녀석들이 우리 머리에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며 머리에 집어넣어야 할 것이 많아서였을까.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진 녀석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빈대의 세계 대이동은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jtbc 갈무리.

다음은 ‘벼룩’. 요 녀석들은 우리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 주변에서 쉽게 발견됐다. 이가 낮은 포복으로 이동하는 녀석이라면, 벼룩은 높이뛰기 선수다. 점프력이 상당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톡톡 튄다. 정신없을 정도로. 그 누가 ‘뛰어봤자 벼룩’이라고 했던가. 뛰는 벼룩을 잡기는 결단코 쉽지 않다.     

 

누렁이 몸에서 붙어살던 녀석들은 집 안까지 뛰어 들어왔다. 할머니 옷 속에도, 내 속옷 속에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겁도 없이. 요 녀석들도 언제부터인지 사라졌다. 더 이상 누렁이를 기르지 않아서였을까? 아무튼 이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을 때부터 녀석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두 녀석의 기억은 가물가물해졌다. 어린 시절 읽었던 ‘전래동화 전집’처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와 벼룩이라는 녀석들이 있었었었었지, 하곤.


코로나19 이후 엔데믹으로 해외여행이 풀린 것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jtbc 갈무리

마지막이 빈대라는 녀석이다. 요 녀석은 달고 다니는 말도 많다. 그러고 보니 빈대라는 녀석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다. 뭣이냐면, 해충 가운데 유일하게 ‘낯짝’을 가졌다는 인증을 받고 있다. 녀석 이름을 붙여 만든 ‘떡’도 있다. 이 녀석을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도 있고, ‘어디서 빈대 붙으려고!’하는 말도 있다.   

   

어린 시절에도 한 번 본 적 없는 녀석. 그 오랜 시절을 어디서 굴러먹다 와선, 마음 약한 사람들의 멘탈을 빨아먹기 시작했다. 빈대 출몰 동선을 알려주는 앱까지 나왔을 정도라니.      


보건당국이 부지런히 역학조사도 하고, 방역을 하고 있다지만 공포감은 이미 사람들 머릿속까지 파고들었다. 다만,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통해 옮긴다는 말도 신빙성이 없단다. 왜냐? 빈대는 야행성이라 빛이 있는 곳은 싫어한다니.     

 

택배로 옮겨올 수도 있다고 한다는 말도 가능성이 희박하단다. 그렇게 따지면 택배 박스에 붙어오는 게 어디 빈대뿐이랴. 바퀴벌레알도 있고, 눈에 안 보이는 세균은 또 얼마나 득시글하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외출하고 돌아오면 집 앞에서 옷을 털고 들어가시라. 택배도 집 밖에서 뜯으시라. 그러면 심적으로 다소 안심은 할 수 있을 터.      


문제는 살충제 내성으로 박멸이 쉽지 않다는 겁니다. 다들 안 물리게 조심하세요. jtbc 갈무리

빈대는 1년을 굶고도 버틴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하는 ‘목숨을 건 단식’은 빈대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원폭에도 살아남은 바퀴벌레보다 생명력이 질기다고 한다.


빈대는 주로 아열대 기후에서 서식하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 나라 저 나라로 확산한다는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다. 11월에도 모기가 날아다니는 걸 보면,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모기는 날아다니니 잡기라도 지.)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엔데믹으로 해외여행이 풀리면서 빈대 이동에 날개를 달았다는 분석도 있다.      


그나마 감염병은 옮기지 않는다니 다행일까. 아니지, 살충제 내성이 생겨 ‘D.D.T’도 안 통한다고 한다. 흠. 이러다 없던 전염성도 생기지 않을까 모르겠다. 코로나 백신과 독감 백신에 이어 빈대 백신까지 맞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난 몇 십 년 빈대가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통과 공포를 크게 느끼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빈대의 내성,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논문을 보면요. 빈대에는 피레스로이드라는 성분 살충제를 사용하는데 열대 빈대는 이 성분에 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충제로는 박멸이 잘 안되고요 어중간한 살충제, 뿌리고 살아남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내성만 강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기존보다 1000배 센 살충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슈퍼 빈대도 확인됐습니다. 2023년 11월 13일, jtbc, <살충제도 안 먹히는 ‘슈퍼 빈대’까지 출현…지구촌이 ‘빈대 포비아’> 중     


빈대의 최고 서식지는 ‘따뜻한 침실’이랍니다. 당신의 침대는 지금 따뜻한가요?

이전 03화 두껍아 두껍아 김포 줄게 서울 다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