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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Dec 06. 2022

나도 가끔씩 눈물을 흘리고 싶다.

1mm, 남자의 눈물, 갱년기

   식사 도중에 와이프가 큭큭 대며 웃는다.

   이따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며 식사를 이어갔다. 옆 테이블의 가족이 떠난 후 와이프는 설명을 시작한다.


   옆 테이블은 부부와 아이 셋이 식사 중이었다.

   아이가 음식을 흘리며 먹자 남자는 그 아이에게 똑바로 못한다며 눈치를 줬다. 아이들은 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갔고, 여자는 남자에게 바로 한심하다는 핀잔을 주었다.


   옆 테이블의 남자는 처음에 웃으며 대꾸했지만, 여자의 계속된 지적에 감정에 북받친 남자의 마지막 한마디에 와이프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나 갱년기야!"


   내 또래쯤으로 보였던 그 남자.

   아마 내가 옆에서 그 내용을 듣고 있었다면, 모르는 사이지만 정말 오지랖이지만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악수 한번 하자고 했을 것이다. 뭔지 알 것 같아서 짠했고, 그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남자의 갱년기는 서서히 진행된다.

   이런 호르몬의 변화를 감지한 것은 최근이다. 사실 예전 같은 패기나 혈기는 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와이프는 나에게 잘 삐진다고 하면서도 전보다 감정 표현이 좀 더 풍부해진 느낌이라고 (궁디팡팡)한다.


   예전에는 잘 못 싸웠다.

   내가 입을 다물고 말을 잘하지 않으니 와이프는 벽과 싸우는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그랬다. 그때는 뭘 어떻게 말을 하고 뭘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갱년기'를 겪고 있는 요즘에는 잘 싸운다.

   잘 싸운다는 말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가 된다는 말이다. 호르몬에 갇혀있던 내 감정이 말로 터져 나오니까 와이프는 요즘엔 싸울 맛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툼의 횟수가 꽤 줄었다.

   그리고 다툼의 시간도 줄었다. 오히려 다툼의 강도도 서서히 약해져 간다. 감정을 전보다 더 드러내는데도 이렇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예전에는 이렇게 감정을 터뜨리는 것을 터부시 했다.

   특히 화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 집에서 막내로 자라온 탓도 있을 테고, 또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화를 내는 것 같은 솔직한 감정을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아, 쓰고 나니 보인다.

   감정을 터뜨리는 것과 감정을 흘러나오게 하는 것의 차이였다. 감정을 막아두면 터지고, 평소에 감정이 흘러나오도록 길을 터두었다면 터져 나올 일이 없다.


   돌이켜 보면 나는 감정의 흐름을 막고 살았으니 감정을 드러내는 형태를 모두 감정의 폭발로 인식하며 살아온 것이다.


   어릴 적부터 울고 싶으면 울고, 화를 내고 싶을 땐 화를 냈다면 그리고 그것이 환경에서 잘 받아들여졌다면 아마도 건강한 감정의 흐름을 경험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울지 마~ 뚝~"

   "사내자식이 울긴 왜 울어"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참나, 울지 말라고 산타할아버지를 이용한 가스 라이팅 노래라니. 이런 말부터 눈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아들이 울 때 나도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와이프는 다르다.

   아들을 안아주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주거나 괜찮다고 더 울라고 한다. 그렇게 힘든 감정을 흘러 보내고 아이는 차분한 감정으로 되돌아간다.


   나도 가끔씩 눈물을 흘리고 싶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 땐 못생긴 얼굴하며 울고 싶다. 솔직히 울고 싶었을 때가 많았는데 쓸데없이 꾹 참으며 살아왔다. 그렇게 스트레스나 힘든 감정을 건강하게 흘려보내지 못했더니 이제는 몸이 아프다. 그래서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더 짧은가 보다.


   와이프와 나는 세상 제일 가까운 사이다.

   이제는 부모형제보다도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내 감정을 솔직히 내보이고, 기대고 싶다. 물론 와이프는 언제든 준비가 되어있다.


   근데... 내가 울면 두고두고 골려먹을 거란 말이지...

   하,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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