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Aug 12. 2023

엉덩이를 의사 선생님께 갖다 바치며

치핵 강점기 18년

   약 18년간의 치핵 강점기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너무 오래 식민지배를 받아서 인지 이제야 그동안 자유 없이 살았음을 깨닫는다. 굳이 표현하자면 18년 동안 입에 물고 있던 뜨거운 콩알을 어느 날 의느님이 나타나 쏙 빼준 느낌이랄까?


   왜 수술을 하고 나면 신세계가 열린다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제는 잘 관리해서 다시는 지배당하지 않기로 결심해 본다. 수술하길 정말 잘했다.



   수술은 금방 끝났다.

   시술에 가까운 수술이었다. 수술대에 엎드려 바지를 내렸고, 긴 청테이프가 ㅋㅋㅋ 내 엉덩이에 붙여진다음 좌우로 음... 나는 실험실 개구리 마냥 침대에 바짝 고정되었다.


   내 엉덩이를 의사 선생님께 갖다 바친 느낌이었다.

   신비로운 환한 조명 아래 나의 부끄러움은 제물이 되어 신께 바쳐졌다. 나는 수치심마저 활짝 열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뭔가 전문가답게 일사불란하게 수술 준비를 했다.


   진통제 주사와 마취주사를 연이어 맞았다.

   수술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마취주사만 따끔하고 묵직하게 아플 뿐 다른 것은 다 괜찮았다. 신께서 아니 의사 선생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친절한 목소리로 중간중간 말을 걸어주셨다. 그리고 어느새 능숙한 손놀림으로 내 뒤에서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처럼 바느질(?)을 하셨다.


   나는 이제 명품이 되었다.ㅋㅋ


   진작 수술할 걸 그랬다.

   수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물론이며 부끄러움과 수치심 때문에 머뭇거린 감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사 선생님의 능숙한 솜씨에, 여자 간호사 선생님들의 (내 부끄러움에) 무관심한 듯 친절함에 감탄하며 어려움 없이 잘 끝났다.


   이런 치료를 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 내 주변에 가깝게 있다는 것에, 그리고 이런 사회에 손쉽게 기대어 살아갈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병원을 갈 때마다 느낀다.

   치료 타이밍을 놓치거나, 생활에 무리를 가하면 이렇게 또 강제로 잠시 쉬어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병원을 두려워 말고 얼른 치료하고 하루라도 빨리 홀가분해져야겠다.


   요즘 와이프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매일 거즈를 매일 갈아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번거롭고 흉한 모습에도 기꺼이 나를 챙겨주는 조강지처에게 감사하다. 어지간하면 혼자 해보겠는데 그러기 쉽지 않다. 고마운데 사양할 순 없으니, 이렇게 말해본다.


   "고맙지만, 사랑할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