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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Oct 05. 2023

마누라가 또 집을 비웠다.

주방 장악 5개년 계획(4)

   이제 초단기 기러기아빠도 끝이다.

   와이프와 아들은 일본에서 곧 돌아온다. 나는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게임도 하지 않는다. 교류하는 친구관계나 동호회도 없기에 이런 기러기아빠 생활에 집안일 이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다.


   혼자 있어도 나의 일상생활은 크게 다를 게 없다.

   아침에 일어나 달리기 하고 돌아와 식사준비를 한다. 샐러드와 벤나주스를 만들고 그리고 달걀 하나 삶는다. 다 먹고 나면 커피 한잔 내려 마시고, 팟캐스트 들으며 설거지를 한다.


시지프스의 바위


   어제는 잠깐 출근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시트와 베갯잇을 벗겨 빨고 건조시켰다. 빈둥빈둥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바퀴달린 행거에서 입지 않는(않을) 옷을 비우고, 주방 상부장, 하부장을 연신 열어보며 비울 것을 스캔했다.


    '주방 장악 5개년 계획'은 살아있다.

   와이프의 저항과 제지가 존재할 수 없는 지금 같은 때가 골든타임이다. 와이프가 곧 돌아오기에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주방 장악의 고삐를 확 잡아당겨야 한다.


   여전히 유통기한 지난 식료품이 남아있었다.

   주방 하부장 구석에 '가루'들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상부장 문옆에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어있던 김은 유통기한보다 1년 더 지났다. 모두 3리터 음식물쓰레기 봉지를 가득 채웠다. 서랍에 수년간 배달음식에 딸려와 쌓여있던 다량의 플라스틱 수저나 포크 등도 모두 비닐을 벗겨 분리수거했다.


많은 사진은 나에게 불리함ㅋㅋ

   물건을 비우는 2가지 기준이 있다.

   첫 번째는 '지난 몇 달간 사용한 적이 있는가'다. 내가 사용한 기억과 와이프가 사용한 모습이 기억이 없다면 비운다. 두 번째 기준은 물건을 집어 들고 잠시 와이프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웃으시는지, 무표정이신지, 아니면 화를 내시는지로 그릇의 운명을 정한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비운건 비밀이다.ㅋㅋ)


   사실 지난 냉장고 비우기를 감행할 당시 1년도 더 넘도록 냉장고 자리를 차지하던 '통깨'를 버렸다. 이번 추석 때 와이프가 묵을 무치려다 냉장고에서 통깨가 사라진 것을 그제야 알아차리고, 와이프의 날카로운 눈빛은 나의 옆통수에 꽂혔고 바로 '한소리 들었다'.


   아무래도 와이프가 음식만들 일을 더 줄여야겠다. ㅋㅋ


   와이프께서 내 브런치를 검열을 하고 있기에 뭘 비웠다고 자세히 말하긴 좀 그렇다. 열거한 개수만큼 비례하여 혼날 텐데, 나만 실토하지 않는다면 다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주방 수납장이 깔끔하고 간소하게 정리되었다.

   어쨌든 비운 것들은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그 쓸모를 계속하거나, 재활용되어 자원으로 이용될 것이다.


   글을 올리려고 보니 조금 걱정된다.

   앞으로 한동안 혼날 일이 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의외로 싹 비워서 속이 다 시원하다고 할 수 도 있(기를 희망한)다.


   후자이길 바란다. ㅋㅋㅋ

잡곡밥해서 얼려놓고 마누라에게 칭찬 듣기


   <후기>

   before/after 틀린 그림 찾기 중인데, 역시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들은 비워도 기억하지 못한다. ㅋㅋ메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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