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Apr 04. 2024

풀파워 : 아들아, 굳이 최선을 다하지는 마.

선착순

   제일 싫었던 것 중 하나가 선착순 달리기다.

   저 멀리 있는 지점을 찍고 돌아오는데, 앞에서 5명까지는 한 번에 끝나지만, 나머지는 다시 갔다 와서 그중 5등 안에 들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나머지는 매번 5명을 가려내기 위해 몇 번이고 흙먼지 구름 속에서 달려야 했다.


   나는 달리기가 빠르지도 체력이 좋지도 않았지만, 웬만하면 최초 5명 안에 들었다. 이유는 으레 선착순을 시키기 전에 나타나는 징후를 미리 눈치 채고 한 박자 빠르게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처음 선착순에서 나의 전력 full power를 모두 쏟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 체력 조건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뿐이었다.

   어쩌다 고참을 밀쳐 넘어뜨린 적도 있었는데, 차라리 나중에 한 대 맞는 게 낫다. 초반 작전에 실패하면 시지푸스의 돌처럼 벗어날 수 없는 반복의 고통 속에 달리고 또 달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 지금도 싫다.


   이런 선착순이 군대에서만 있었을까?


   학교 성적표에는 등수가 적혀있고, 고등학교 때는 내신 등급으로, 수능점수는 상위 몇% 인지, 대학은 정원에 맞춰 성적대로 선착순을 끊었다. 회사에 입사할 때도 비좁은 관문을 뚫어야 했다. 그리고 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도 경쟁업체와 보이진 않는 제로섬게임을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라'는 슬로건에 세뇌되어 왔다.

   그렇게 인생의 각 단계에서 full power를 쏟아내야만 살아남는다는 인생 공식이 몸에 박혀있다. 그러니 이 공식을 충족하지 않을 땐(뭔가 간절히 열심히 아니 빡세게 살지 않을 땐) 스스로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그런 full power를 숭고하게 바라보는 편이다. 그래서 간절하고 절박한 스포츠 선수의 모습에 열광하고, 반대로 간절함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는 선수나 감독에게는 마녀사냥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내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는 논리로 말이다.


   요즘의 나는 저런 집단최면에서 진작 벗어나지 못함을 후회한다.


   '최선'을 '오랜 시간 힘들여 애쓰는 것'과 동일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단순한 논리로만 따지면 뜨거운 여름에 건설 현장에서 육체노동하는 분들이 제일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나와 비슷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중학교 동창이 얼마 전 국내 자산 순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것을 보고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야자만 끝나면 바로 잤다는 전교 1등 동창은 지금 시골 약국에서 페이약사 여럿 두고 일 년에 6억씩 가져간다.


   오랜 시간 애쓴다고 최선도 아니고 능사도 아니다.

   18년째 사업을 하면서 뒤늦게 깨달은 바다. 몸을 갈아 넣을 때보다, '고개를 들고 눈을 떴을 때' 수입은 2배로 늘고, 업무 시간은 1/4로 줄었다.


   처음엔 돈을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을 벌었다.

   그렇게 시간을 버니까, 몸과 마음도 돌볼 여유도 생겼다.


https://brunch.co.kr/@jaemist/225


   이제는 '열심히 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말에게 채찍질하는 것 같아서 싫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도 '열심히 해라',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1/ 좋은 습관을 지키는 것,

2/ 좋은 환경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3/ 항상 가장 좋은 컨디션에 있을 것을 강조한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학교 앞 당구장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이건 비평준화 명문고에 Top 3로 입학하고, Bottom 3로 졸업한 비결 중 하나다.ㅋㅋ)


   그 당구장 사장님 아니 당구 스승님은 한쪽 팔다리에 편마비가 와서 거동이 불편한 분이었지만, 당구장에 찾아오는 고수들과의 대결에서 지는 걸 거의 보지 못했다.


   당구 큣대를 한 손으로 잡고, 당구공을 무심히 툭 치는데, 공은 스멀스멀 느리지만 당구대를 돌고 돌아 다른 공을 정확하게 맞췄다. 그랬던 그분의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암만 세게 쳐봐야 소용없어. 정확하게 밀기만 하면 되는 걸 가지구."


https://brunch.co.kr/@jaemist/141

 


이전 03화 ‘뷰티풀’ 투자 포트폴리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