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지금 내 화를 어떻게든 뾰족하게 만들어서 저놈이 제일 아파할 부위를 정확히 맞춰야 하는데 몹시 흥분하다 보니 제대로 던져질라나 모르겠다.
누구는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던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상대가 적어도 나만큼은 아프거나 불편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그런데 딱 적당히 되기가 쉽지 않다.
흥분한 상태에서는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좀 부족한 것 같으면 여전히 약이 오르고, 좀 과하다 싶으면 또 미안한 마음도 들고 체면도 생각난다. 그래서 또 짜증이 난다.
그래서 용서가 쉽다고 하는 건가?
저 놈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서로의 이익이 공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마땅히 내가 누려야 할 이익과 즐거움이 침해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화가 나고 때로는 싫은 소리를 한다. 그리고 사이다 같은 복수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 '사이다 같다'는 말은 꽤 적절한 비유다.
사이다는 꿀꺽꿀꺽 마실 때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입안에 갈증이 남기 때문이다. 사이다 처럼 속이 시원한 말은 나중에 불편한 갈증이 남는 것 마저도 닮았다.
그렇다고 지랄을 안 하자니 내 속이 타고, 지랄을 하자니 적당히가 안된다.
어떻게 지랄을 하면 좋을까?
뭐, 나라고 뭐 성인군자겠나?
부끄러운 기억은 얼마든지 많다. ㅋㅋㅋ 나 같은 어리석은 자는 그런 부끄러움 속에서 얻어맞으며 배워야지 어쩌겠나? 나는 갈등상황 속에서 서투른 감정표출로 한두 번 망한 게 아니다.
나는 상대의 교양 있고 세련된 대응을 당할(?) 때 부끄러워진다. 특히 나보다 어린 사람들의 그런 '교양 있는' 뭔가 '정제된 표현으로' 상황을 정리당할 때 더 큰 수치심을 느낀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도대체 뭘 배운 건가 싶어서 말이다.
한 예로 나보다 열 살은 어린 B사장은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다. 맞다. 상대의 불편한 말에 반드시 대답을 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에게 답할 가치가 없었다는 메시지도 던졌고, 답하지 않은 것을 무례함이 아닌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려버리는 그의 센스에 나의 뒤통수는 아직도 얼얼하다.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린 친구에게 내가 뭐라고 할 건가. 그는 내가 몰리는 코너를 아는 거다. 내가 맞고 틀리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세련된 풋워크는 흥분한 나를 코너로 몰았고, 결국 KO를 이뤄냈다.
연예인들 중에서도 꽤 이름값이 높은 연예인들은 구설수에 쉽게 아니 끝까지 반응하지 않는다. 대개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방향을 선택한다. (억울하지만)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부유물이 가라앉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기 때문이다.
또 어설프게 반응해 봤자 아니 어떻게 반응을 해봤자 현란한 풋워크로 자신을 코너로 몰 수 있는 인간들은 그들의 인기만큼이나 세상에 널렸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지랄을 하게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으려고 했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나는 지랄을 해버렸다. 사이다를 마신 거 마냥 잠시 시원했다가 찝찌름한 갈증을 느껴야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도 불편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46년을 살았어도 발전이 없는 걸 보면 나는 그 B사장처럼 교양 있고 세련되게 지랄하긴 글렀다. 어렵다. 나라는 인간한테는 숙달되기 어려운 방법이다. 아니면 그런 기질이 나의 유전자에는 없나 보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걸 선택하기로 했다. 일단 흥분한 상태에서는 뭐든 적당히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노련한 상대를 만나서 그의 비장의 세련된 풋워크에 또다시 코너로 몰리고 싶지 않다.
꼭 상대의 말에 전부 답을 해야 할 이유도 없고, 감정의 부유물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응해도 늦지 않는 일이라면 일단은 무대응이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 쉬운 방법일 것 같다. 근지러운 입을 닫아야 하는 참을성을 좀 길러야겠지만 말이다.
아이씨, 인생 뭐 이렇게 복잡하냐.